걷는 즐거움
< 2005. 새로운 봄을 맞으며.>
아침에 일어나면 몸이 찌뿌등하고 나른함을 느끼는 요즘입니다.
웬지 삶이 무료해지기도 하고 잔신경이 많이 쓰이면서 의욕이 하나도 없는 상태가 계속됩니다.
문득 지루한 일상을 바꿔보기도 하고, 약해진 몸도 생각해서 걷기를 시작해보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뭔가를 해야겠다고 생각이 되면 바로 실천하는 저인지라 그날로 당장 시작했지요.
차를 놔두고 아침 출근을 걸어서 하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걷기에 편하도록 옷차림을 가볍게 하고 운동화를 신고서 집을 나섰습니다. 날씨도 좋아서 제 결정을 지지해 주는듯 했지요.
걷기를 시작하자마자 이내 기분이 좋아지기 시작했습니다. 다시 2,30대로 젊어지는 것 같은 생동감도 생기고, 의욕적이고 패기만만했던 지난 날들로 되돌아가는 느낌이었습니다. 마음이 즐거워진 탓에 입에선 자연스레 노랫소리가 나오기 시작했죠. 젊은시절 찬양 대원이었기에 화음 맞춰 찬양하기를 즐겨했건만 그동안 노래할 기회가 별로 없어서인지 요즘 들어서는 목소리가 영 옛날 같지 않았었는데, 걸어가면서 큰소리로 노래할 수 있는것이 너무도 행복했습니다.
길가는 사람들은 신경 쓸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면 걷는 사람이 많지 않은데다가 지나가는 차소리에 제 노래소리가 감춰지므로 맘껏 소리지를 수 있기 때문이지요. 숨이 차서 자주 호흡을 해야하는 애로사항은 좀 있지만 견딜만 했습니다. 더 이상 좋은 발성연습환경은 없을듯 싶어집니다.
그러고 보니 정말 걷는 사람이 별로 없습니다. 모두들 편안함에 길들여진 모양인지 오가는 자동차만 분주할 뿐입니다.
‘편안하게 차를 타고 가는 습관에 젖은 사람들은 걷는 즐거움을 모르는 모양이야. 나도 그랬으니까“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걷고 있는 내 앞으로 긴 머리의 젊은 아가씨가 바바리코트를 입은 채로 자전거를 타고 지나칩니다. 핸드백을 손잡이쪽에 걸고 열심히 발을 굴리는 긴 머리의 날씬한 아가씨의 뒷모습이 어찌나 아름다워 보이던지....
영화속에 나오는 바로 그런 모습이었습니다.
나도 자전거를 한번 타볼까?
하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습니다.
몇 년전 여름이었지요 아마.
처녀적엔 제법 자전거를 잘 탔었기에 오랜 공백기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름 자신감이 있었지요.
집앞 공원에서 맨다리가 다 나오는 반바지 차림으로 자전거를 타기 시작 했습니다. 너무 자신 만만했던 탓이었을까요? 10분을 못가서 모퉁이를 돌아가는게 서툴렀는지 그만 넘어 지고 말았습니다. 그 바람에 다리를 10바늘이나 꿰매는 큰사고를 당했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얼른 달려와 응급처치를 너무도 잘 해주셨던 고마운 아저씨가 생각나네요. 자신의 런닝셔츠를 찢어서 제 다리를 싸매 주셨거든요. 병원가느라 당황해서 감사의 말씀도 잊었었던게 지금까지 맘에 걸립니다. 연락처조차도 몰랐으니까 .)
20년만에 다시 시작했던 자전거 타기는 10분만에 그 날로 끝이 났습니다.
그 후론 자전거에 대한 미련을 접었었지요.
하지만 예의 그 아가씨의 자전거 타는 모습이 다시 저로 하여금 자전거를 타도록 유혹하니 어쩝니까. 바퀴가 좀 작은 자전거로 다시 시작 해봐야 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아침 걷기 출근이 늘 마음대로 되는 것은 아닙니다. 바쁜 현대인의 일상에 걸맞게 차를 쓸 일이 왜 그렇게 많은지요.
요즘사람들이 왜 그렇게들 몸이 아프고 성인병이 많은지 알것도 같습니다. 분주함으로부터 놓여나는 그날이 바로 현대인의 진정한 자유의 날이라고 감히 주장해봅니다.
걷는일이 주는 즐거움의 또다른 하나는 주변을 세심히 관찰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마음에 생긴 여유라고나 할까요? 차를 타고 휑하니 지나가던 때는 보지 못했던 것들이 걷는 동안만큼은 세밀히 보이거든요.
지난 한 해동안의 오랜 기다림이 보람이 있어 어느새 제 시절을 만나 아름다운 진보라의 정열을 맘껏 내보이며 피는 저 철쭉, 새로이 제 철을 맞아 만개한 목련이며 벚꽃잎의 무리지은 도도한 화려함, 아직은 이르지만 제 활개칠 그 날을 고대하며 봉오리를 품은 라일락의 야무진 꿈도 제 눈을 피하지는 못합니다.
다소곳이 제 때를 기다리다 조물주가 허락하는 그 때 마음껏 세상에 펼쳐 보이는 그들의 꿈이 벌써 보이는 듯 합니다., 때를 다해 스러져 가는 것을 두려워도 아쉬워도 하지 않고 그저 생의 자연스런 순환일 뿐이라고 순응하는 자연의 생명체들은 어찌보면 우리의 가장 가까운 스승인 지도 모를일 입니다. 그들을 볼때면 나도 자연의 한자락일 뿐이라는 잊었던 깨달음이 다시 생각납니다. 뒤질세라 놓칠세라 분주한 삶의 한가운데서 잠시 잊고 살았던 생의 본연의 진리를 상기하는 것이지요.
소중한 자연들이 몇 해 전부터 소리소문 없이 자꾸 없어 집니다.
대형 아파트 건설회사들이 운행하는 집채만한 트럭들이 여기저기 흙먼지를 일으키며 산을 깍아 내리느라 여념이 없고 사람의 통행까지 위험하게 만들곤 합니다. 대형 할인 매장과 상가건물들 앞 길가는 간판이며 선전 표지판들이 인도 블럭까지 올라와 나무들의 설 자리를 가차없이 빼앗습니다. 그나마 조금 남아 있는 자연의 덕을 언제까지 볼 수 있을런지 모르겠네요. 그때까지 만이라도 걷는 즐거움을 누려봐야겠다고 마음먹습니다.
오늘은 어쩐지 열심히 일이 잘 될것 같네요. 충전이 잘 된 건전지처럼 말이죠.
글쎄요.
활기찬 삶도 결국은 ‘노력’을 필요로 한다는 교훈을 배웠습니다.
인생이란 거저 얻어지는 건 없는 법이니까요.
님은 걷는 즐거움을 누리고 계시나요?
Ⅱ
<2011 또다른 봄이 시작되네요>
올 봄 또다시 걷는 일에 충실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마침 제가 방문해야 하는 이민자의 가정이 멀지 않은 시내에 세집이나 있었고 한 가정만 남산면 백양리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리저리 스케쥴을 짜보니 굳이 차를 이용하지 않고도 일을 할 수 있을것 같더 군요. 계획을 실행하기 전에 먼저 남편에게 큰 소리를 쳤습니다.
‘난 이제 되도록 차 안 쓸거다’
고 말이죠.
누구보다 반가워 한 사람은 바로 남편이지요. 제 차를 폐차시킨 후로 아침마다 남편을 출근시켜 주고 제가 남편의 차를 빌려 써 왔거든요.
말에 책임을 지기 위해서라도 제 결심을 실행할 수 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백양리의 방문지로 가는 방법은 ‘춘천인의 오랜 꿈, 전철’을 이용하기로 습니다.
남춘천역은 너무 복잡한 게 싫어서 차로 ‘김유정역’까지 갑니다. 우리집에서 김유정역까지 가는 길엔 인도가 없는 곳이 많아 위험하므로 무리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거기서 전철을 타면 ‘굴봉산역’까지 세 정거장 거리입니다. 전철을 타고 가니 젊은 시절, 미어 터지는 1호선 지하철을 타고 종로 2가에 있던 직장에 출근하던 기분이 되살아나데요. 뭘 해도 혈기 왕성하던 그 시절로 돌아간 듯한 느낌이 싫지 않더군요. 전철에서 내려 운동화 끈을 단단히 매고 15분정도 걸으면 저의 목적지에 닿습니다. 시골길을 걷는 기분이 꽤 쏠쏠합니다. 저는 사람 없는 길을 걸을 때면 꼭 노래를 부릅니다. 발성 연습도 되구요. 시골의 맑은 공기를 더 많이 마실 수 있거든요. 자가용을 이용하던 제가 처음으로 걸어서 S씨의 집을 방문하던 날, 이민자의 가족들이 놀라며 물었습니다.
‘아니, 차는 어쩌고 걸어오시나요?
전철을 타고 왔다는 제 말에 몇 번이고 다시 물었습니다. 정말 전철타고 왔냐구요.
저는 밝은 소리로 말했죠.
‘얼마나 좋은데요. 기름값 안들죠. 백양리의 공기가 좋으니 기분도 좋구요 건강에도 얼마나 좋겠어요?“
그들은 의외라는듯 고개를 갸우뚱하데요.
일주일에 두 번 가는 일이 하나두 힘이 안 들더라구요.
‘굴봉산역’이나 ‘김유정역’은 사람들이 거의 없어 완전히 저만의 역으로 느껴질 정도이니 그런 호강이 없습니다. 그에 더하여 굴봉산역엔 잔잔한 음악도 흘러나옵니다. 주로 7080세대의 노래들이라서 눈치볼것 없이 이내 따라부릅니다. 늘 거의 아무도 없어 온통 제 차지라니까요. 따스한 햇살이 눈부신 요즘엔 아무래도 행복할수밖에 없는 계절입니다.
석사동 두산아파트와 진흥아파트 그리고 석사아파트를 가는 날은 40분전에 집을 나섭니다. 걷기 편한 운동화를 신고 아들의 엠피쓰리(MP3)를 빌려 귀에 꽂은 다음 가방을 어깨에 엇매고 나면 준비는 끝납니다.
끝날 것 같지 않던 지루한 겨울도 마침내 끝을 보이더니 오늘은 완연한 봄날씨 네요. 덥기까지 했으므로 점퍼를 벗어 들고 걸었더니 땀이 났습니다.
우석초등학교 뒷길로 걷고 있는데 어디선가 나무를 쪼는 듯한 소리가 났습니다. 자세히 보니 물총새 (아마 새 이름이 맞을걸요. 십여년 전 인제의 산 속에 가끔 가서 지낼 때 남편이 가르쳐 주었던 바로 그 새니 말입니다) 가 나무속의 먹이를 꺼내려는지 그 작은 머리로 계속해서 나무를 두드리고 있더군요. 전 딱따구리만 나무를 쪼는 줄 알았습니다. 저러다가 그 조그만 머리가 어떻게 되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되더군요. 나무 쪼는 소리가 얼마나 크던지........
사진을 찍으려고 핸드폰을 들고 가만가만 다가가도 눈치채지 못하는 걸 보니 꽤 열중했나 봅니다. 가까이서 이리도 찍고 저리도 찍고 계속 눌러댔습니다. 걷는 자 만이 누릴 수 있는 작은 행복을 오늘 또 맛보게 됐네요. 석사동에도 물총새가 살고 있다는 건 오늘 처음 알았습니다. 자가용을 이용했을 때 얻을 수 없던 것을 걸으면서 얻어 가네요. 새에 집중하다가 하마터면 시간에 늦을 뻔 했습니다. 이민자의 아파트에 들어서자마자 냉수 한 잔을 청했답니다.
돌아오는 길엔 걷는 코스를 달리해서 경찰청 앞으로 길을 잡았습니다. 새로 정비된 깨끗한 길을 걸으면 기분도 상쾌합니다. 호반베르디움 아파트 뒷길엔 예쁜 커피집이 있습니다. 동행이 있었다면 그곳을 그냥 지나치지 않았을텐데 좀 아쉽네요. 안을 슬쩍 들여다보니 그 집 분위기가 제 맘에 들었습니다. 성우 오스타 부근에 요즘 들어 커피전문점이 우후죽순격으로 들어서네요. 바리스타가 뜨는 직업이라더니 그 영향도 있는 모양입니다.
암튼 꽤 오랜시간을 걸었음에도 지치지 않는걸 보니 봄의 기운이 초능력을 주나봅니다.
샘들도 이 봄에 심기일전하는 맘으로 한번 걷기를 시도해 보심이 어떠실른지?
마침 오늘아침 KBS '아침마당‘에 이시형박사가 나와 ’걷기만큼 좋은 운동이 없다‘면서 걷기를 강권하네요. 들어서 손해 볼 말은 아닌것 같아요. 건강한 상반기를 보내시기를 기대합니다.
아자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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