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추석일지
계절의 순환이 어쩜 그렇게 빠른지 모를일이다. 오랜 장마와 무더위도 때를 다하면 스러지게 마련이어서 시나브로 하늘이 높아지고 긴소매 옷이 자연스러운 날씨가 되어가더니 어느새 추석이다. 우리 집안은 남들처럼 멀리 고향을 향해 귀성전쟁을 치루는 것도 아닌데다가 만나면 불편한 가족이 있다든가 힘든일을 혼자 감내 해야 하는 집안내 뿌리깊은 불평등적 요소가 있는등 소위 말들 하는 명절증후군하고는 거리가 멀기에 참 다행이다. 하지만 많은 음식장만으로 인한 육체적인 고단함은 피할 수가 없다.
올추석은 예년과는 좀 다르다. 작년에 작고하신 시아버님의 산소로 성묘를 가야하기 때문이다. 추석에 성묘할 묘가 있는 것이 그동안 집안에서만 추석을 맞았던 우리에겐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아버님 묘가 화천에 있는 까닭에 올 추석은 화천 아랫동서네 집에서 차리기로 했다. 한꺼번에 준비하면 너무 힘들므로 음식을 한 가지씩 맡아 장만해 오자고 제의하기에 그렇게 하기로 했다. 나는 부침개며 전거리를 맡아 아침부터 부지런히 음식 만들기에 부산했다. 송편빚을 쌀은 미리 불려놓았다가 방앗간에 들러 쑥과 함께 찧은 것과 흰 것을 반반으로 준비하여 놓았고, 송편소는 해마다 그랬듯이 어머님께서 깨속과 팥속으로 준비하셨다. 송편소는 깊은 손맛과 오랫동안 숙달된 기술을 요하는 것이어서 며느리들중 누구도 선뜻 제가 하겠노라고 나서는 이가 없어 그것 만큼은 아직껏 어머님 몫으로 남아있다. 어머님의 참깨소는 단연 손자들에게 인기이다. 저마다 깨속 송편을 고르느라 늘 작은 다툼이 일기도 하는 것이다. 때론 밤이며 콩속을 준비하기도 하지만 늘 애들에겐 외면당하기 일쑤이니 우리집 송편소는 올해도 단연 깨속이 주를 이룬다. 송편은 올해도 변함없이 그 어느집의 것보다도 맛있는 떡으로 어머님의 건재를 확인한다. 언젠간 꼭 전수받아야 할 솜씨이다.
음식준비가 끝나자마자 서둘러 우리는 화천으로 향했다. 어머님과 아주버님을 모신 남편의 차보다 집안 애들을 태운 내 차가 먼저 떠났다.
'자. 잊어버린 것 없지? 그럼 출발한다아아~~’
하늘은 드높고 상쾌했다. 화천가는 길은 벌써 울굿불긋 단풍이 물들기 시작했다. 고향길 가는 느낌이 바로 이것이렸다.! 거의 반 이상 달려왔을때 갑자기 핸드폰이 울렸다, 남편이다.
“난데 혹시 떡쌀 가져왔냐구 어머님이 물으시는데 가져가는 중이야? ”
‘응? 뭐라구요? 어머머 어쩜 좋아, 떡쌀을 냉장고에 두고 그냥 왔네.~~~~“
요즘들어 부쩍 심해진 건망증이 또 발동했다. 제일 중요한 것을 빼놓고 왔으니 어쩌랴. 일단 차를 멈추고 남편 차가 도착하기를 기다리기로 했다. 햇살이 너무 따가왔으므로 일단 차에서 내려 나무그늘로 가서 기다리려는데
"어머, 이게 뭐야?.”
보라색 꽃밭이다. 꽃은 군락으로 피어있을때 아름답다. 햇빛에 온몸을 내어맡긴 꽃도 아름답지만 산그늘에 묻혀 은은히 묻어나는 색은 더욱 아름답다. 어느새 송편쌀에 대한 걱정은 깨끗이 잊어버린채 꽃에 취해버렸다.
" 디카 어딨니?”
아들 녀석을 다그친다. 이리찍고 저리찍고 포즈를 취하느라 잠깐 정신이 없다. 금방 뒤따라온 남편은 어이가 없는지 피식 웃고 만다. .철없어 보였겠지.
집에는 자신이 되돌아 갔다 올테니 어른들 모시고 화천으로 먼저 가라면서 평소에 애지중지하며 아끼는 자신의 차를 선뜻 내어 주고는 덜덜거리는 내 소형차를 되몰아 냅다 달려갔다..
" 내가 갔다 온대두~~’
내심 바라던 바였음에도 말끝을 흐리며 엉뚱한 소리를 낸다. 시어머님만 안계셨어두 맘에 없는 말은 하지 않아도 되었을것을.
미안한 마음도 잠시, 우린 곧 다시 즐거운 추석맞이 여행길로 회귀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화천이 저만치 보인다. 읍내 진입로엔 여러 가지 가을 꽃으로 장식한 길이 우리를 맞았다. 화천군수가 잘 한다더니 그말이 맞는 가보다. 깨끗해진 거리며 예전보단 활기가 느껴진다.
군청의 구내식당을 운영하는 아랫동서는 전문가 답게 벌써 많은 음식을 다 장만해 놓고 있었다. 시동생이 용화산이며 근처 산을 헤집어가며 뜯어왔다는 갖가지 버섯요리며 나물들과 불고기에 토란국까지...... 넓고 편리한 군청식당에서 어머님을 비롯하여 여자들만 옹기종기 둘러앉아 송편을 빚기 시작했다. 지난번 요리강습에서 배운 송편빚기를 떠올리며 서울식 강원도식이 골고루 나오게 빚는다. 빚은 송편 아래에 솔잎을 가지런히 깔고 찜통에 연신 쪄내시는 어머님은 어쩐지 떡쌀이 적은 것 같다며 고개를 갸우뚱 하신다.
"이거 닷되 맞니?”
그러고보니 남편은 흰 떡쌀만 가져왔다. 쑥송편 쌀은 우리집 냉장고에 고스란히 자리
하고 있을터였다.
"그러게 내가 간다니까 우기더니만.......“
말끝을 흐리며 애써 되돌아갔던 남편을 탓했다.
어머님은 아무말도 안하신다. 손주며 아들딸들에게 송편이라도 넉넉히 싸주고 싶으셨을텐데 속이 좀 상하셨을 것같아 맘이 편치 않다.
저녁을 먹고 온가족이 동서네 좁은 거실에 겹쳐앉아 TV시청 삼매경에 빠졌다. 동서는 날 보고 목욕탕에 가서 피로좀 풀고 오지 않겠냐고 눈짓한다. 나쁠리 없지. 이미 찜질방 중독현상까지 보이는 동서가 제 바닥임을 과시하듯 앞장선다. 태어날 때부터 화천에서 살아온 동서이니 당연한 일이다.
목욕탕에 들어서니 저마다 동서를 아는체 한다. 동서는 보는 사람마다 내 소개를 하느라 바쁘다. 소개는 무슨......난 그냥 물에 눈 녹듯 한쪽 옆으로 스러졌으면 좋으련만, 왜 안그렇겠는가 너나없이 벌거벗고 서서 인사하는 어색함 이라니....
"우리 형님이예요’
동서를 보며 덜덜한 성격이니 그럴만도 하겠다고 넘겨버렸으나 영 오금이 편치 않다.
"아유, 날씬해서 좋으시겠어요.’
칭찬인지 걱정인지 구분이 안가는 말로 들리지만 어쩌겠는가. 일일이 눈웃음으로 답례를 했다. 목욕을 하고 난 후의 개운함을 만끽하며 시골 밤길을 걸어오니 모든 피로가 풀리는 듯 하다. 방에 들어오니 어머님은 이미 잠이 드셨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야 하니 나도 자명종을 해 놓고는 금새 잠이 들고 말았다.
추석날 아침이다. 부지런히 상을 차리고는 큰아주버님의 인도로 추석날 명절예배를 드렸다. 그리고는 곧바로 시아버님 산소로 출발했다. 성묘하러 온 사람들로 공원묘지는 몹시 분주했다. 기독교식, 불교식, 천주교식이 다 달라 성묘하는 가족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차례를 지내고 있었다. 우린 간단히 예배로 성묘를 마치고 묘를 둘러보았다. 작년에 입힌 떼는 아직 무성하지 않다. 비석 앞에 꽂아둔 조화는 몹시 바래 제 색을 잃어버렸다. 화천사는 막내시동생이 사다 심었다는 국화는 화려했던 제 때를 이미 넘겨 스러져가고 있어 누런 이파리만이 지저분하게 제자리를 지키고 있는 사뭇 썰렁한 모습이어서 고인이 생전에 많은 자녀를 두었다는 사실을 무색케 했다. 어느 누구의 묘보다도 많은 자녀의 이름이 올려 있는 아버님의 비석이 오늘은 무척 작아보였다. 반성해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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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을 내려왔다. 그리고는 곧장 물로리로 향했다. 이제부터는 제 2의 추석명절이 시작되는 것이다. 물로리는 10년전에 폐교된 초등학교이다. 올봄 교육청으로부터 임대받아 사용하고 있는데 오래된 키 큰 나무들로 둘러싸여 있는 경관이 탁월한 학교이다. 텃밭도 3~400평가량 있어서 어머님이 제일루 좋아 하시는 곳이다.
사실 남편과 시어머님은 이번 추석을 물로리에서 지내기를 원하셨다. 애들이 실컷 뛰어놀수 있는 운동장과 넓은 교실이 있고 주방시설이 모두 갖추어져 있는데다가 자연속에서 키운 고구마며 고추랑 깻잎도 따면서 시골스럽게 제대로 추석을 맛보고 싶은 마음이셨으리라. 하지만 경찰관으로 근무하는 화천 시동생이 휴가를 내지 못해 물로리까지 올 수 없다기에 화천에서 지내게 된것이다. 남편은 애들 오면 고구마랑 옥수수 따는 재미를 느끼게 해준다며 벼르던 차였는데 일말 실망을 한듯하였으나 하루라도 함께 지낼 수 있게 되었으니 그걸루 됐다.
우리보다 앞장서 출발한 막내 동서네는 처음 가는 길을 잘도 찾아간다.
미시령 닮은 고갯길을 넘어야 하기에 지형 탓이나 하지 않을까 걱정했건만 전혀 괘념치 않으니 고맙다. 학교에 도착하자마자 이내 짐을 풀고 점심을 준비했다. 추석음식을 많이 싸가지고 왔기에 밥만 했어도 금세 진수성찬이 차려졌다.
밥을 먹고 나서 아이들을 데리고 고구마밭으로 갔다. 호미를 하나씩 쥐어주고 고구마 캐는 시범을 보였다. 어느새 나도 농사꾼 티를 낸다. 여자애들이라 그런지 영 조심스럽다. 그래가지고야 어디 한나절인들 몇알이나 캐려나. 지난여름 고구마를 심어놓고 학교내부일이 바빠 김도 제대로 못 매어 준 탓에 큰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고구마가 너무 조금 달렸다. 하긴 이만큼 나오는 것도 감지덕지지 뭐 고구마한테 해준게 있어야 바래지. 고구마를 심어놓기만 하구 물한번을 못줬으니 고구마가 욕했겠다. 별소리를 다 해 가며 한 고랑을 다 캐니 한소쿠리 조금 넘는다. 캐느라고 애쓴 막내동서네 덜어주고 남는 것은 어머니랑 조금씩 나누었다.
들깨가 벌써 벨 때가 다 되었다고 어머님이 걱정하신다. 막내동서랑 우리 여자들은 모두 깨 밭에 들어가 깻잎따기에 돌입했다. 동서는 깻잎이 우리몸에 아주 좋다고 엊그제 TV 에 나왔다면서 질세라 열심히 따느라 정신없다. 고추며 가지, 옥수수, 콩, 팥들을 추수했다. 손이 제대로 가질 못해 수확량은 많지 않지만 그것만으로도 갑자기 부자가 된 듯하다.
저녁이 되자 바람이 서늘해졌다. 방에 전기요를 깔고 히타를 켰다. 막내네 4살짜리가 혹 추우면 감기들까 염려되었기 때문이다. ( 추울까봐 걱정했었는데 성능좋은 전기요 덕에 오히려 더운 잠을 자야 했다. )
어느새 주위가 어스름해지고 둥근 보름달이 껑충 동쪽 하늘로 올라앉자 남편은 장작이며 마른 풀잎들을 모아다가 바비큐통에 불을 피웠다. 벌써 따뜻한 불이 제일 반갑다. 피운 불이 얼마나 승하던지 한기를 느끼던 우리들은 일제히 불 앞으로 모여들었다. 환한 가스등아래 벌건 장작불 주위에 의자를 놓고 빙 둘러 앉으니 세상 부러울게 없다.
막내 시동생네가 삼겹살을 사왔다기에 추석음식 많은데 누가 먹느냐고 시큰둥 했지만 밤참으로 맛깔스런 포기 김치와 함께 바비큐통 위에 석쇠를 얹어 굽기로 했다. 밭에서 캐온 고구마랑 감자를 호일에 싸서 불밑에 넣는 것도 잊지 않았다. 고기를 구우니 미처 굽기도 전에 없어지고 만다. 안 사왔더라면 울뻔 했다며 그날밤 우리 모두는 포만감 때문에 밤잠을 설쳐야 했다.
아침 7시가 되도록 모두들 늦잠에 빠져있다. 나는 살며시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와 아침공기를 쐬었다. 어제 못딴 깻잎도 좀 더 따고 이슬맞은 풋고추도 여린 놈으로 따서 아침상에 놓아야지. 기름진 음식만 먹었으니 아침엔 개운하게 멸치넣고 김치찌개도 끓였다. 아니나 다를까 모두들 김치찌개에 손이간다. 잘한 생각이다. 살림 연륜이 벌써 20년이 넘었으니 이젠 척척이다.
아침밥을 먹기가 무섭게 막내시동생을 필두로 모두 앞 개울로 고기잡이에 나섰다. 오는길에 구입한 족대와 어항 그리고 미끼로 사용할 밥덩어리 조금,고기 담을 커다란 바스켓, 바위를 들어올릴 지렛대가 준비물이다.
어머님은 애들 손을 잡고 함께 따라 나서신다. 계형이가 지렛대로 바위를 들어올리면 남편은 족대를 바윗돌 가까이 대고 쫒겨오는 고기를 잡아올리는 방법을 쓰기로 했다. 버들치며 튕가리며 제법 큰 고기들이 그물에 걸려 올라오는가 싶더니 이내 손바닥만한 메기 한 마리가 걸려들었다.
‘와’
신이 난 남편과 아들이 동시에 소리치면서 흥분했다. 금방이라도 바구니를 가득 채울 기세다. 구경삼아 따라나섰던 막내동서의 애들도 덩달아 난리다. 개울물에 발이 빠지는 것도 모른채 말이다. 물도 맑고 시원한 청정개울이 눈앞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난 여름 내내 우리는 개울구경을 하지 못했다. 밭에서 하루종일 일하다 보면 해가 금방 넘어가고 부랴부랴 집으로 돌아오기도 바빳던 탓에 천렵은 꿈도 못꿀 일이었다. 추석을 맞아 처음으로 고기잡이에 나서는 식구들의 감개무량을 오늘만은 맘껏 추켜 주고 싶다.
시동생은 좀 더 깊은 물에 어향을 장치했다. 미끼로는 ‘에이스과자’가 최고인데 미처 준비하지 못했다고 아쉬워 하면서 밥알미끼로나마 작은 고기들을 잡아 올리고 있었다. 바구니 중간까지 이를 정도로 고기들이 채워지면서 더러는 산소부족 탓인지 무작정 탈출을 시도하면서 위로 튀어 오르는 놈이 있는가 하면 성질 급한 놈들은 벌써 허연 배를 위로 하고 드러눕기도 했다. 온 식구가 한끼 먹을 만큼은 되었기에 우리는 그만 접었다. 메기도 4마리나 되니 이만하면 괜찮은 수확이다. 매운탕을 맛있게 끓일 자신이 없는데 어떻하지? 잡는데 의의가 있는 것이지 맛이야 아무려문 어떨라구.
결국 어머님이 나서신다.
“ 매운탕이 별거니?” 하시면서.......
마당에 상을 차리기로 했다. 기대가 너무 컸던 걸까? 매운탕은 생각만큼 맛있지는 않았다. 설 끓여서 그런게 아닌지 모르겠다. 하지만 불어오는 바람을 양념삼아 복에 겨운 점심식사를 했다. 해가 떨어지기 전에 그만 철수하자는 어머님 말씀에 갑자기 바빠진다. 마무리하고 집으로 돌아가려니 왜 그리도 할일이 많은지 모르겠다. 애들은 아쉬운 마음에 더 있다가 가기를 조른다. 하지만 매일의 일상이 기다리고 있으니 그럴수도 없다. 도시생활에 익숙해진 사람들에게는 시골생활이라는 것이 내내 아주 맘 잡고 들어서기엔 쉽지 않은 일이다. 집으로 오는 길은 늘 피로를 동반한다. 며칠동안 집을 비웠으니 할 일이 기다리고 있을 터이다. 그래도 임금못지않은 호사를 누렸으니 즐겁게 감당할수 있으리라.
운동장에서의 캠프화이어, 이만한 행복이 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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