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인의 날 강원도행사가 5월 20일 호반체육관에서 있었다. 강원도에 거주하는 외국인 약 1000명정도가 모여 체육대회와 장기자랑등을 하면서 모두 한데 어울릴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지체 높으신 강원도지사 양반이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제시간에 시작되지 못한 아쉬움만 빼면 참으로 의미깊은 행사였다. 요즘들어 부쩍 국가차원의 관심이 많아진 결혼이민자에 대한 배려덕인지 각 방송사들도 앞다퉈 세계인의 날 행사를 취재하느라 분주했고 저녁TV 강원도 뉴스에 꽤 많은 시간을 할애하면서 세계인의 날을 알렸다. 인간은 누구나 똑같은 존재이다. 그가 지구상의 어느지역에 살고 있는지를 불문하고 말이다. 물론 문화적차이를 간과할수는 없겠지. 문화란 태생지 이상으로 우리를 우리답게 만드는 중요한 조건이니까. 인간은 모두 "호모 싸피엔스" 인류학적 분류상 동일 분류에 드니까 본능도 같겠지 . 굶으면 배고프고 때리면 아프고.
행사가 열리던 그날 체육관에 모인, 약 10여개국에서 온 모든 사람들은 하나였다. 어떤 이유가 되었든 우리나라에서 살기 위해 이땅에 발 붙인 그들은 그날 모두 '코리안'이었다.
줄넘기로 "꼬마야"놀이도 하고 오재미 바구니 터뜨리기랑 줄다리기등 한국의 전통게임을 훌륭히도 소화해 내며 그들은 즐거워했다. 상품이 걸린 게임에서는 질세라 극성을 부리는 모습은 우리들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단일민족인 우리나라에선 그동안 외국인을 보는 것이 흔치 않은 일이었기에 요즈음의 늘어난 외국인들을 보면 격세지감을 느낀다. 이젠 국민적 정서가 그들의 출현이 결코 의외가 아닌 그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인정하게 된 듯하다.
* * * *
내가 하던일을 접고 잠시 쉬던 차에 새로운 일을 찾다가 결혼이민자가 있는 가정들이 한국사회에서 잘 살아갈 수 있도록 도우며, 특히 그들 (95%이상이 여성이다)이 한국인과 결혼하여 낳아 키우고 있는 2세들이 이 사회에서 이색인으로서 소외감을 느끼며 살아가지 않고 정상적으로 잘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지도사의 일을 하게 됐다.
이 일은 내가 이제껏 살아오면서 경험한 것들과 내가 아는 지식과 지혜를 총동원해야만 하는 그야말로 총체적 서비스를 제공해야 할 일이다.
한국어와 한국문화, 전통, 음식, 예절, 아동양육방법, 심지어 병원 이용방법법, 도서관이용법, 박물관 관람법,부부상담. 시부모상담. 자녀와의대화방법상담.
독서치료, 미술치료.음악치료,
아무튼 그녀들이 택한 우리나라에서 한사람의 사회인으로서 우리 아이를 키우면서 잘 적응하고 살아갈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내가할 수 있는 일이 있고, 내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이 일에 기대를 걸고 있다.
센타에는 각 나라별로 자조모임도 가지고 있어서 한국에서 살아가는 외국인으로서 자신의 출신국민끼리 만남을 가지고 서로 도우며 한국사회에 어떻게 하면 잘 적응하고 당당히 살아갈 수 있을까를 늘 고민하며 모여 의논하기도 한다. 나는 일본인 자조모임의 지도선생님으로 배정되었다. 일본말을 좀 배워둘껄 그랬다. 하지만 그녀들이 한국말을 제법 잘 하니 문제는 없다.
개별적으로는 필리핀에서 10년전에 온 M 과 베트남에서 온지 3년째인 H , 그리고 캄보디아에서 작년에 한국에 온 S 를 돕고 있다.
M 은 10년 넘은 베테랑 답게 아주 잘 적응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녀는 화천지역의 학교 원어민 영어강사로서 독보적인 활동하고 있으면서 숙명여대 대학원에서 테솔 공부를 계속하고 있고 화천지역 결혼이민자의 대변인역할도 겸하고 있는 에너지 넘치는 여성이다 . 그래서 처음엔 내가 도울 것이 별로 없을 것 같아 걱정했는데 그래도 그녀는 생각보다 많은 도움을 필요로 하고 있었다. 초등학교 3학년인 큰딸아이는 필리핀을 오가며 자란 탓에, 내내 한국에서 자란 둘째딸보다 한국에서의 학교생활이 수월치 않은것 때문에 염려하는 중이고, 고아로 자란 남편이 아무런 친척이 없어 외로운 점도 그녀의 속깊은 고민이다. 원어민교사이긴 하지만 유색인종이기때문에 겪는 아픔도 그녀의 아킬레스건이다. 백인계 원어민교사를 선호하는 한국적 국민정서가 M은 이해되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뭐든 적극적이다. 정부에서 요즘 결혼이민자들을 위한 배려가 많아지자 자신의 대학원공부를 위해 혹시 장학금혜택이 없는지 알아봐 달란다. 운전면허도 따야 하는데 한국말이 너무 어렵다며 엄살을 부린다. 그녀의 한국어실력은 ' 상' 이지만 영어로도 시험볼 수 있다는 정보를 주었더니 기뻐한다. 스승의 날이라고 잊지 않고 케익을 챙겨주는 그녀를 보면서 벌써부터 보람을 맛보고 있다.
H씨
이름이 너무 어려운 그녀는 미모의 베트남여성이다. 남편과 거의 20년 차이가 나며 삼혼가정이다.
고등학생인 전처아들들이 2명이며 그들은 춘천에서 따로 살고 있다.
그녀는 한국에 온지 3년째이며 3살짜리 아들을 두고 있다. 엄마를 닮아 눈이 이쁜 아이는 천방지축이지만 아주 귀엽다. 한국말을 잘 하지 못하는 엄마때문인지 아직 할수 있는 말이 10개 이하이다. 결혼이민자들의 가장 큰 고민은 바로 그 점 이다. 아이들이 말을 잘 하지 못하고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것. 그래서 그녀들은 집에서도 거의 모국어를 사용하지 않으려한다. 아이를 위해서 어떻게 해서든 한국말을 빨리 배우려는 의지가 무척 강하다. 아이만큼은 온전한 한국인으로 살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하지만 멀리 앞날을 내다본다면 엄마나라의 말도 함께 사용하는 것이 아이를 위해 바람직할것같다는 내 생각을 조심스레 건네봤다. 베트남이 점점 발전하고 있으니 앞으로는 이중언어자가 기회카 많을 것이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나라에서 온 사람들은 대체로 순수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게 내 생각이다. (우리나라가 잘 살지 못했을때 우리들도 지금보단 순수했던 것을 생각하면 이해할수 있는 일이다. 자신이 먹을것도 넉넉지 않은데도 옆집 조석을 염려하던 부모님 세대를 보아온 나로서는 그 정감이 여운으로 남아 있으므로 때때로 그시절이 내심 그립기도 하다. )
그녀는 내가 갈때면 무언가를 대접해야 한다는 의무감(?)마저 있는 것 같다.
매번 대문에 들어서기가 무섭게
"선생님, 뭐 드실래요? "
한다.
" 너무 신경쓰지 마요. 금방 먹었는데요 뭘"
하면 그래도 자기집에 온 선생님께 아무것도 안드린다는 게 죄스러운 모양이다. 순수한 그녀!
그녀는 나름대로 한국인과의 결혼에 성공한 케이스로 여겨진다.
남편이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고, 외국인 부인을 위해 여러모로 살펴주기에 요즘은 컴퓨터로도 한국어 공부, 영어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다.
학창시절 전교1등을 놓치지 않았다며 자랑스러워 하는 그녀는 남다른 학구열을 가지고 있다. 쉬는 시간조차 아까워할 정도로 말이다. 머잖아 유창해진 한국말로 내게 자신의 일상을 수다떨수 있는 날이 올것같은 즐거운 예감이 든다.
어제는 잡채만드는 법을 알려주고 함께 만들어 먹고 남은 재료로 시금치된장국 끓이는 법을 알려주니 저녁에 남편이 좋아할 거라면서 기뻐한다. 동구밖까지 나와 허리숙여 안녕히 가시라고 인사하는 그녀를 보면서 피곤하지만 뿌듯한 하루였음을 감사했다.
문제는 S 씨이다.
작년에 캄보디아에서 온 24세의 그녀는 38세의 병든 신랑과 시부모를 모시고 살고 있다. 센터에서 준 정보로는 귀국초창기에 잘 적응하지 못해 집을 나와 쉼터에서 몇달간 기거하다가 시부모가 얼마간의 댓가를 주고 잘 타이르는 바람에 다시 귀가한지 얼마 되지 않는단다.처음 그녀를 방문했을 때는 시부모님이나 남편 그리고 그녀까지도 겉으로는 평온한 모습이었기에 그녀의 속깊은 상처를 눈치채지 못했다. 또한 한국어를 배워야겠다는 열망이 얼마나 뜨거운지 잠시도 쉴 틈 없이 공부하곤 했다.
헌데 그녀를 만난지 얼마 되지 않은 어느날 그녀의 얼굴이 몹시 굳어 있는 것을 감지한 나는 내심 긴장했다.
그녀가 나에 대한 경계의 눈빛을 풀고 말을 쏟아내기 시작하자 나는 두가지 면에서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하나는 입국한지 1년밖에 되지 않은 그녀의 한국어 말솜씨이고 (단어만 나열하는 수준임에도 불구하고 내가 알아듣는데 별 어려움이 없었다) 다른하나는 그녀의 맘속에 그토록 지독한 분노가 숨겨져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그녀는 똑똑했다. 자기주장도 강하며 시집식구들에 대한 질책도 조목조목 논리정연했다..
'남편(그녀의 발음으론 "남펀"이다)은 자신의 편을 들어주지 않고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시모는 큰소리를 지르고 친구들도 만나지 못하게 한다. 나는 동물이 아니다.
한국말배우러 가는 것도 싫어하고 돈도 전혀 주지 않는다.
모든 것을 형님과 시모가 다 해결하고 자신은 전혀 권리가 없다"
그녀가 내게 숨조차 쉬지 않고 쏟아낸 내용들이다.
상담가로서는 벅찬 미션이다. "그랬구나" 라면서 공감해주고 들어주는게 전부일 수 밖에 없는 무능!.
그런 와중에 또 한번 폭풍이 불었다.
화천문화원에서 결혼이민자를 위한 무료 결혼식을 올려준다기에 신청했는데 결혼식 준비과정에서 패물 때문에 시어머니와 충돌이 생긴 것이다. 내가 갔을때는 이미 눈이 퉁퉁 부어 있을 정도로 울고 난 뒤었다. 나를 보자 친정엄마 만난듯이 모두 이르는 그녀는 분노로 이글거려, 그녀가 참아야 한다고 한마디라도 한다면 폭발할 상태이라 그저 눈치만 보았다.
"내 돈 으루 결혼 팔찌 했는데 왜 시어머니가 소리쳐요?
어떻게 도울 수 있으려나? 걱정이다. 한국의 사정을 조분조분 설명하면서 마음을 다독여주고, 뭐든 부인과 의논하라며 남편을 설득하기도 했지만 돌아오는 길이 영 편치않다.
더구나 남편은 희귀질환으로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형편에 있고 경제력도 없어 생활보호대상자이며 늙으신 시부모에게 얹혀사는 처지이니, 장날이 되면 노점상을 하는 시어머니를 도와 장에서 부침도 부치고 물건도 팔곤 한다는 그녀가 딱할뿐이다. 센터가 후원자 결연등의 방법으로 도울 수는 없는지 알아봐야겠다.
남의 나라에서 산다는 것이 결코 쉬운일이 아닌데 용기를 낸 그녀들에게 힘을 보태주고 이 사회의 튼실한 일원으로 살아가도록 노력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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