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문화센터

생일찾기 프로젝트

이제쯤은산촌에서 2011. 4. 21. 22:11

오랫만에 소그룹활동을 해보기로 했습니다.

그냥 흘려보낸다면 너무 아까울것 같은 청명한 가을날씨가 우리를 몸살나게 했던 탓도 있지요.

사실, 가을이 시작되는 9월 초순경이면 벌써 저는 해마다 어김없이 찾아오는 소위 '센티멘탈리즘'에 빠지기 시작합니다.

그 정도가 보통은 넘어서 혼자있는 시간을 찾아 자연의 가을 속으로 찾아드는 시간이 많아집니다.

짬만 생기면 '서면' 어느곳의 한가로운 강 둑을 찾아가 차를 세워놓고 , 가을 햇살에 반사되어 반짝반짝 빛나는 강물을,  살갗에 와 닿는 가을의 바람결을, 높고 푸르다 못해 짤랑 깨질것만 같은 새파란 가을하늘을, 그리고 서서히 시작되는 나뭇잎들의 현란한 변신들을 바라보면서 살아있음을 무한 감사하는 시간을 가지는 거죠.

그러니 이 아름다운 가을을 그냥 보낼 제가 아니죠.  

해서 며칠전부터 그녀들에게 바람을 넣었습니다.

"우리이~ 날씨가 너~무 아름다우니까 가을바람 쐬러 가지 않을래요?"

 

1. 항상 해맑게 웃는 A 는 단박에

  "네, 선생님"

 하고 대답합니다.

"저 하루종일 애기 봐요, 소 밥 줘요. 빨래해요, 너무 힘들어요, 바깥에 못 나가요,.....가고 싶어요."

그녀는 어디 간다는 말만 나오면 갑자기 눈이 빛나고 말이 많아집니다.

자그마한 체구속에 도저히 있을것 같지 않은 "힘"을 발휘하며 하루 네 번 10 마리가 넘는 소에게 여물을 날라다 주고  때맞춰 물 주는 일을 도맡아 하고 있는 그녀는 7개월 된 딸을 키우고 있는 애 엄마입니다.

(농촌에서 사용하는 짐수레를 용케도 넘어뜨리지 않고 밀 수 있는 그녀가 신기하기도 해서 어느날 저도 한번 밀어보기로 했습니다. 세발 짐수레는 균형 잡기가 아주 어려웠습니다. 오히려 그녀를 성가시게 만들고 있는 제 스스로를 보면서 머쓱해서 그만 물러나고 말았죠 )

"하지만,~~"

그녀의 부푼 마음은 1분도 되지 않아 금새 풀이 죽네요.

그녀의 외출을 싫어하시는 시어머님이 맘에 걸리는 눈치입니다.

"어머님께는 내가 한번 말씀드려 볼게요"

하자 또 금새 얼굴이 밝아집니다. 어린애같은 그녀가 애엄마인 것입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마음속엔 뭔지 모를 안타까움이 또 살짝 이는 것은 어쩔수가 없네요. 그러지 않으려 애쓰건만.....

 

2. "네? 선생님, 소풍이요? 아, 소풍?"

B 의 반응은 항상 조금은 과장적입니다.

그녀의 발음으론 '소푼"인데 그것보다는 그냥 '놀러가는것'이 제일루 쉬운 설명입니다.

아직 한국말이 어눌하지만 그녀의 호기심을 따라갈 사람은 아마 없을걸요?

"애기 데리고 힘들지 않겠어요?"

"괜찮아요. 선생님. 괜찮아요."

괜찮다는 말을 연발하며 그녀 또한 몹시 기대되는 눈치입니다.

입국한지 2년이 채 안되는 데다가 시골에 살면서 농촌일을 해야 하는 그녀는 시내에 나가본 적이 별로 없습니다.

아직 혼자 버스를 타고 시내에 갈 자신이 없는 그녀야말로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에서 거의 벗어난 적이 없어  바깥으로 나간다는 말만 들어도 호기심이 이는 건 당연하지요.

다행히도 시어머님은 편한 분이어서 그 걱정은 안해도 되니 고맙기만 합니다.

"언제요? 선생님?"

재차 되묻는 그녀가 우리들의 D-day 까지 기다리는 일이 쉽지는 않을것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3. C 는 백일 넘은 애가 바람쐬면 탈이 날까 걱정 된다며 이번엔 빠지겠다고 하니 좀 섭섭하네요.

하지만 일리있는 그녀의 말에 더이상 강요는 하지 않았습니다.

4. D 는 이민자들의 귀감이 되는 여성입니다.

한국에 온지 5년여 되었기에 한국말도 잘 하고 그녀의 생활 또한 모범적이지요..

딸하나를 데리고 시부모님, 남편과 함께 농사일을 열심히 하며, 이것저것 못하는 것이 없는 재주꾼인데다가 쉽지 않은 환경속에서도 미래에 대한 꿈도 결코 버리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 내일 다른분들과 함께 바람쐬러 가요."

그녀라고 힘들고 빠듯한 농삿일에서 잠시 벗어나는 것을 어찌 마다하겠습니까.

"좋아요. 선생님"

숨 쉴 틈도 없이 되돌아오는 반응을 보면서

' 내일 날씨가 좋아야 할텐데....

우리 사진도 찍고 맛있는 점심도 먹고 스트레스 화~악 날리고 와요 응?"

내일 있을 소풍을 생각하며 들뜬 마음으로 공부를 시작하려는데 그녀가 문득 말했습니다.

" 선생님, 나 내일 생일이예요."

" 그래요? 어머 잘됐다아아. 마침 소풍가려는 날이 생일이라니 얼마나 잘된 일이야. 더 재미있겠는걸?

앗! 참. 그런데 생일이면 가족들하구 지내야 하는거 아닌가? 어쩌지?"

내가 더 들떠서 목소리 톤을 올리며 말하자 그녀는 이내 씁쓸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내 생일 아무도 몰라요"

그녀의 설명으론 해마다 자신의 생일이 되어도 누구하나 챙겨주는 사람은 없답니다.

미리 언질을 줘 보지 그랬냐는 제 말에 그녀는 3년이나 그렇게 해 봤는데 아무도 몰라주더랍니다.

그녀는 식구들의 생일을 한번도 잊지 않고 큰댁 식구들까지 다 챙겨주었건만 자신의 생일만은 잊혀진지 오래이므로 이젠 기대조차 하지 않는다며 웃었습니다.

"앞으로도 절대 내 생일 얘기 식구들에게 안할거예요."

생일에 관한한 마음을 굳게 닫아버리기로 작정한게 분명했습니다.

그녀의 쓸쓸한 표정을 보면서 나는 다짐했습니다.

잊어버린 생일을 찾아주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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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우리들의 D-DAY 이자 D 의 생일날!

제스스로도 우리의 "생.찾' 프로젝트" 에 기대가 되는지 저절로 평소보다 일찍 눈이 떠졌습니다.

날씨는 아주 좋았습니다. 하나님께서도 우리들의 날로 정한 것을 인정해 주는것 같았습니다.

"따르릉"

좀 이른 시각인데 핸폰이 울리더군요. D 였습니다.

"선생님"

핸폰 너머로 들리는 그녀의 목소리가 아래로 가라앉았습니다.

"저희집에 안오셔두 돼요. 저는 오늘 못갈것 같아요. "

"아니 왜요?"

"오늘 집이 텅 비기 때문에 집 봐야 돼요. 어머님두 일 가셔야 하구 ......."

"집이 비면 더 좋지요. 시부모님께 허락받아야 할 일도 없으니....."

"요새 벼를 말리는데 누가 훔쳐갈까봐 그거 지켜야 해요."

잠시동안 할말이 생각나지 않았습니다. 속에서 울컥하는것이 치밀었지만 곧 평정을 되찾고 제가 말했습니다.

"미역국은 먹었어요?"

괜히 물었다는 생각이 얼른 들었지만 이미 내뱉은 말을 어쩌겠습니까?

그녀는 아무 말 안했습니다. 미루어 짐작이 가는 일이지요. 다른 사람들과의 약속때문에 오늘의 일정을 취소하지는 못하고 일단 알았다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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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빛을 가릴 모자와 편한 신발을 신고 집을 나섰습니다. 그녀들을 픽업하기로 했던 시간보다 좀 일찍 서둘렀지요.

자동차 기름두 꽉꽉 채워넣고 빵집에 들러 제 아들 생일에도 못 샀던 커다란 케익을 샀습니다. 그리고는 D 의   집을 향해 악세레이터를 힘껏 밟았습니다.

마당에 들어서자 시아버님과 남편은 벼 말리는 걸 내다 널으시면서 나갈 채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시어머님은 벌써 일을  가셨다고 하더군요.

케익상자를 들고 들어서면서 짐짓 밝은 목소리로 ,

"안녕하세요? 오늘 D 씨 생일이라면서요? 그래서 축하하려구 잠깐 들렀습니다."

생일이란 말에 일부러 힘을 주어가며 인사하자 시아버님과 남편은 '갑자기 무슨소린가~ ' 하는 표정이다가  이내 감 잡았다는 듯이

" 아, 예":

하면서 엉겁결에 제 인사에 대꾸했습니다..

머리도 빗지 않고 애와 함께 방안에 있던 D는 내 목소리를 듣자 벌떡 일어나 밖으로 나오며 어리둥절한 얼굴로 나를 맞았습니다. 그러면서 내 손에 들려있는 케익을 보자 화들짝 놀라며.

" 선생님, 이 비싼 케익을 어떻게 사셨어요? " 했습니다..

뒤따라 마당으로 들어오신 시아버님께 말씀드렸죠.

"사실은 오늘 저희들이 오랫만에 바람쐬려 나가기로 했거든요.

그런데 D 씨가 집이 비어서 못간다고 하기에 섭섭해서 케익이라도 전해주려고 왔어요. 같이 가고 싶어했는데....."

그러자 시아버님은 금방 상황파악을 하시고서는

" 괜찮으니까 어서 갔다와라. 선생님 기다리시잖니. 내가 좀 나중에 나가도 된다."

님들께서 D 의 얼굴을 좀 볼 수 있었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아마도 지옥에서 천국으로 옮겨 가는 사람들의 표정이 그럴것 같았습니다..

갑자기 얼굴빛이 밝아진 그녀는

"아부지, 저 가도 돼요?"

자신없는 목소리로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시아버지를 보며 되물었습니다..

" 그래 갔다 와."

그녀의 행동이 그처럼 민첩한줄은 예전엔 미쳐 몰랐습니다.

아이를 챙기고 자신의 옷을 주섬주섬 갖춰입는데 채 십분이 안걸리더군요.

내가

"아버님 점심은 어떻하나?"

하고 묻자 그새 벌써 다 챙겨놨다는 겁니다.

인간은 정신을 소유한 존재로서 그 마음에 어떤 생각을 갖느냐에 따라 삶의 행동과 모습이 달라지는 것이라는 걸 다시 또 깨달았습니다.,

D를 차에 태운 내 마음은 하늘을 날았습니다. 같은 동네에 사는 B를 태우고 나자, 전에 이미 안면이 있는 그녀들은  서로 반색을 하며 말을 시작합니다. 30 여분을 달려 반대편에 위치한 A 의 집에 들어서자 A 는 이미 동구 밖까지 애를 안고 나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시어머님도 오늘만큼은 표정이 밝으시며 한마디 하십니다.

" 아, 애 옷을 좀 따뜻하게 입히랬더니 말 안듣구 그러네에."

그러기에 제가 얼른 시어머님 말대루 따뜻한 옷 하나 가지고 오라고 말하자 그녀는 마지못해 집안으로 뛰어 들어갔습니다. 시어머님이 안보시는 곳에서야 입히던 말던 일단은 어머님 말씀에 따르는게 좋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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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여곡절끝에 우리들은 출발했습니다.

해방된 민족이 따로 없더군요. 이내 깔깔대며 어린(?) 그녀들 본연의 모습이 되살아났습니다.

"오느을~~~~` D 씨 생일이예요"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A 가 얼른 생일축하노래를 선창합니다.

"생일축하합니다.생일축하합니다. 사랑하는 00엄마아아 생일추카함니다아아아아"

자그마한 내 프라이드 자동차가 떠나갈듯 노래하며 우리는 마냥 행복했습니다.

목적지인 화목원으로 가는 길에 충열탑에 먼저 들렀습니다. 11월초순이니 가을 단풍이 어찌나 운치있고 환상적인지요.

그녀들 덕에 저 또한 모처럼의 소풍을 만끽하고 있었습니다.

저마다 디카들을 들이대고 사진찍기에 바빴습니다. 그런데 B 가 문득 이해가 안가는 행동을 합니다.

충열탑에서 기념으로 다 함께 사진을 찍자고 하자 자신은 절대로 그곳에서 사진을 찍지 않겠다고 고집을 부리는 것입니다.

이유인즉, 총들고 싸우는건 무서운 일이라 그렇다는 겁니다. 일행중에선 제일 나이가 많은 편인 그녀가 왜 그랬는지 굳이 알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건 그냥 그녀의 마음일 뿐인걸요.

화목원에선 늦은 국화전이 시들해져가고 있었지만 우린 마냥 즐거웠습니다. 저는 애들 때문에 거동이 자유롭지 못한  그녀들의 디카를 모두 들고 연신 카메라를 바꿔가며 찍어대느라 정신이 없었습니다.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사진에 박아야 할텐데~ 하는 일념으로 이리저리 사진 구도를 잡느라 우리 모두는 행복한 고민에 싸이곤 했습니다.

산림박물관에 들어가 관람도 하고 커피도 뽑아 먹으면서, 점심시간을 훌쩍 넘겼건만 배고픔도 잊고 모처럼의 여유를 즐겼답니다.

미리 예약해 놓은 식당 ( 매운것을 못먹어서 지난번에도 닭갈비를 구경만 했던 B를 위해 하얗게 양념한 돼지불고기집을  수소문해 놨었습니다 ) 에 가서 맛있게 점심을 먹었습니다. 애들 데리고 힘들었던 그녀들이라 식욕들은 왕성했습니다.

대부분이 육식을 자주 못하는 형편들이라 오늘 만큼은 실컷 즐기기를 바랬습니다.

시부모님들께 돌아오겠다고 말씀드렸던 시간을 훌쩍 넘기고 말았기에 집에 도착할 때마다 일일이 늦은 귀가에 대한 양해말씀을 드리고 하루를 마무리 했습니다.

돌아서는 나를 다시 대문밖까지 따라나온 D 는

" 선생님 덕분에 오늘 너무 행복했어요. 안그랬음 하루종일 우울했을텐데요."

한다.

그녀의 집에서 돌아오는 길은, 인적이 드문 나즈막한 산길을 넘어와야 하는데 지는 저녁해를 받아 곱게 물든  노을과 함께 길가에 늘어선 가을단풍이 어찌나 아름답던지 절로 탄성을 지르게 합니다.

평화로운 가을길을 넘어오면서 오랫만에 제 자신에게 칭찬을 했습니다.

"그래, 잘 한 거야. 그녀가 생일을 찾게 되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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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절이 다가옵니다.

생각해보니 감사할 일이 어찌 그리도 많은지 모르겠습니다..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감사할 일 뿐이더군요.

그 중에서도 오늘은 제가 한국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제일루 감사했습니다.

학창시절 자주 외던 시가 생각납니다.

'내가 그누군가의 눈물을 씻겨줄 수 있다면 나의 사는 것이 헛되지 않으리~"

님들께서도 오늘은 감사한 일들을 헤아려 볼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총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