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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갑다, 친구야

이제쯤은산촌에서 2025. 4. 8. 07:11

오래전 ,TV 에 유재석이 진행하는
    '반갑다,친구야'
라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방송국에서, 당시 잘 나가던 인기연예인들의 초등학교 동창생이나 오랫동안 소식이 끊긴 친구들을 해당 연예인 모르게 찾아내어
친구가 맞는지 찾도록 했다. 그 친구와 함께 했던 좋은 추억이나 숨은 에피소드 등, 둘이만 알 만한 힌트를 줘서 그 친구의 이름을 알아 맞추게 하는, 뭐 그런 프로그램이었던 것 같다. 이런저런  과정을 거쳐 드디어 친구를 알아보게 된 그 연예인은 손을 내밀며 '반갑다, 친구야', 라 외치고 재회의 기쁨을 나누는 장면이 나온다. 나는 그 프로그램을 참 열심히 시청했었다.  세월 탓에 많이 변해 버린 친구들이 오랜만에 반갑게 만나는 모습을 보면서 마치 내 친구를 만난 듯 감동이 밀려오곤 했었다.

5~60년쯤 전, 서울 남산 아래 후암동에 자리한  S여고시절,  나를 포함해 Y,  O, S  우리 넷이는 단짝이었다. 기억이 가물거리긴 하지만 아마 고교1학년 때 같은 반이었나 보다. 무심히 떨어지는 꽃잎 하나에도 저마다의 감성으로 끊임없이 웃고 재잘거리던 꿈 많던 소녀시절부터,  졸업후 서로의 진로가 달라진 후에도 우리는 많은 시간들을 함께 했었다. 내 근무지가 종로이니 때로는 우리  사무실에서, 또는 서울대학병원에 근무했던 Y와 O를 만나러 가서 혜화동과 동숭동의 어느 찻집에서 늘 우리 넷이는 그렇게 수다삼매경에 빠지곤 했다. 자주 만나는 사인데도 어찌 그리 할 말이 많았던지...

모두들  결혼하고 나서는 아무래도 독신일 때만큼 자주 만나기는 어려웠지만 그래도 돈독한 우리 우정의 빛이 바래지 않을 만큼은 모임을 가져오던 터였다. 그러나 애들 키우고 직장생활도 하며 바삐 살아야 했던 우리들의 생활이 버거웠던 걸까? 혹은 인생이 그렇듯 세월따라 어쩔수 없이 변해가는, 그 어떤 변화의 바람이 우리에게도 불었던  걸까? 우리가 만나는 횟수가 시나브로 줄어들더니 언제부턴가는 부쩍 뜸해지고 그후 한동안은 전화로만 서로의 안부를 주고 받으며 지냈다. 그래도 문득 보고 싶을 땐 서로 전화해서 언제라도 번개팅으로 다시 뭉칠 수 있는 그런 관계가 지속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인가 O의 소식이 갑자기 뚝 끊겼다. 우리 셋이는 서로 궁금해하며 그녀의 소식을 알고자 애를 썼다. 그녀의 직장 동료들에게 물어 보았으나 직장에서도 그녀가 그만 둔 후로는 소식을 모른다고 했다. 우리의 궁금증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무슨 사정이 있더라도 우리한테까지 말 못할 일이 무에 있겠냐며 서운한 마음까지 들었다. 그 후로도 우리는 그녀를 찾기 위해 애를 썼었다. 당시 SNS의 일종으로 'I  love school', 이라는 인터넷 Site가 유명했었는데 출신학교와 연도 등 몇몇 정보를 입력하면 학창시절의 친구를 서로 찾아주는 역할을 했었기에 그곳에서도 찾아 보았으나 그녀의 소재를 도무지 알수가 없었다.

 그런 채로 여러 해가 가고 우리 셋도 점점 소식이 뜸해지다가 아예  2~30년간 서로 소식을 모르고 지내게 되었다. 그러다가 십 년쯤 전인가? 우연히 Y와는 연락이 닿게 되었다. S도 O처럼  그동안 연락처가 몇 번 바뀌다보니 점점 연락이 닿기가 쉽지 않았다. 나와 Y는 가끔 연락하며 둘만의 연결고리라도 다시 이어진 것을 다행으로 여기며 지내왔다.

사십여 년만인 오늘 아침, 나는 갑자기 한 통의 카톡 문자를 받았다. S였다.

**아, 안녕?  나 S야!  S여고 졸업한 절친 너 맞지???

나는 너무나 놀랍고 반가운 나머지 망설임 없이 그녀에게 보이스톡을 했다. 거의 40년 만에 듣는 친구의 목소리는 어제인 듯 하나도 변하지 않아 금세 내 친구임을 알 수 있었다. '세상에나' 를 연신 발하며 우리는 두서없이 온갖 소식들을 번갈아 쏟아냈다. 그런데 더 놀라운 소식은 그토록 찾던 O와 연락이 닿았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25년 전 캐나다로 이민을 가서 현재 토론토에 살고 있단다. S는 어젯밤 늦게 O와 연락이 닿아 카톡으로 몇 시간 동안 대화했노라 했다. 그랬구나. 외국으로 갔으니 그리 연락이 안됐지. 새삼스레 지난날의 추억들이 물밀듯이 몰려왔다. 우리는 즉시 단톡방을 개설하여 넷이 함께 대화하기 시작했다. 나는 춘천에서, Y는 분당, S는 서울, 그리고 O는  캐나다 토론토에서 수다에 동참했다. 알고보니, 2025년  모교인 S여고의 졸업 50주년 동창회모임을 추진하는 회장단이 동문들한테 소식을 전하는 과정에서 캐나다의 O를 찾아낸 거란다. 우리는 그동안의 궁금했던 것들을 묻고 또 물어가며 한시간이 넘도록 단톡방에서 떠날 줄을 몰랐다. 그리고는 쇠뿔도 단 김에 빼랬다고 당장 낼모레 만나기로 했다.  각기 흩어져서 살아오던 우리들은 강남역에서 만나기로 했다. O가 빠진 우리의 만남이 다소 아쉽겠으나 우리가 만나는 시간에 토론토에서 보이스톡으로 함께 하기로 했으니 어쨌든 우리 넷이 다 모이는 것이다. 40년 만에 만나는 얼굴들은 어떻게 변했을까. 아무래도 그녀들을 만나는 날까지는 오랜 친구를 마주할 기대감에 잠 못이루는 밤들을 보낼 것 같다. 카톡으로 다 하지 못한 숱한 묵은 얘기들을 남김없이 쏟아낼 준비를 하면서.
     참 반갑다. 친구들아!
고희가 됐는데도 소싯적 내 이름을 불러주는 친구가 있다는 게 어디 보통 일인가?

※후기 1
  강남역 1번 출구에 먼저 나와있는 S는 먼발치에서 봐도 딱 내 찐친이다. 서로 반가이 끌어안으며 호들갑을 떨었다. 세월의 흔적이 보이지만 사십 년 전 그대로다. 그녀만의 캐릭터가 하나도 안 변했다. Y도 저만치 우리를 향해 오는 게 보였다. 언제나 봐도 fashionista 답게 차림이 멋진 그녀다. 세련된 그녀지만 나이는 어쩔수 없는지 만나자마자 요즘 치과다니며 임플란트 하느라 매운 걸 못 먹으니 부드러운 걸로 먹잔다. 나도 체력이 젊을 때 같진 않으니 남의 얘기가 아니다.
점심시간의 강남역은 직장인들이 쏟아져 나와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식당마다 인산인해다. 겨우 순두부백반으로 얼른 밥을 먹고 찻집을 찾아 자리를 잡고 앉자 우리들의 호구조사가 시작됐다. 애들은 잘 컸나, 손주는 몇명인가, 뭐하면서 지내나, ..... 세월이 변해도 천성은 여전해서 과묵한 성격의 S는 말을 많이 하지 않고, 나이 들면서 부쩍 말이 많아진 우리 둘의 수다를 열심히 들어준다. O가 토론토에서 그 시간에 보이스톡을 기다린다고 했는데 주위가 너무 소란해 상황이 좋질 않고 또 시차가 있어 늦은 시간일테니 참기로 했다. 서로의 얘기를 듣고 나니 너나할 것 없이 우리들 모두는 참 열심히도 살아왔다. 그래서인지 다들 별 후회는 없는 듯하다. 우리 나이에 어울릴 만한 얘기들, 예컨대, 이 나이 되고보니 삶이 어떻다는 둥, 살다보니 뭐가 더 중요한 지 깨닫게 된다는 둥 인생이 어떤지에 대해 끊임없이 주고 받으며 달관한 듯 모두 초연한 모습이다.
두 세 시간을 쉬임없이 얘기하다가 S가 갑자기 말일에 처리해야 할 은행 볼일을 깜빡했다며 걱정이다. 오늘만 날이 아니니 앞으로 자주 만나자며 그녀를 보내고 찻집을 나온 Y와 나는 쉬 헤어지기가 아쉬워 양재의 숲을 거닐며 못다한 회포를 마저 풀었다.
네 명이 모두 함께 하지는 못했으나 우리들의 재회는 꽤나 의미가 컸고 또 감사했다. 저마다 있는 곳은 달라도 모두 열심히 그리고 보람있게 살아왔기에 굳이 말하지 않아도 지나온 나날들이 어땠는지 짐작이 갔다. 내일은 토론토에 있는 O에게 보이스톡을 해서 그녀의 목소리라도 들으리라. 젊은날의 생기발랄했던 그녀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나 또한 패기만만하고 활기 넘치던 그 순간으로 잠시나마 돌아갈 수 있기를 기대하면서...

*후기2
full  member로 단톡방을 개설한 후 우리는 때때로 자신들의 일상을 공유하며 예전의 끈끈했던 관계로 회복 중이다. 세월의 연륜을 품은 우리 넷은 인생에 달관한 듯 무슨말을 해도 잘 통하니 40년 쯤의 공백이 무색하다. 모두 몸과 마음의 건강 덕에 우리의 우정이 길게 이어지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