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만이던가? 인사동에 가본 지가.
처녀시절 세종문화회관에 가는 길에 잠깐 스쳐지나간 게 다지 아마?
요즘 퀼트 삼매경에 빠져 지내는데 선생님께서 서울 인사동에서 '퀼트전시회'가 있는데 한번 가보지 않겠냐고 권했다. 마침 짬이 나는데다가 한번쯤 대가들의 작품을 보는 것도 도움이 될 것 같아 선뜻 그러마고 대답했다.
사실 전시회도 보고 싶었지만 장소가 인사동이라는 것이 썩 맘에 들었다. 왜냐면 잘 아는 지인중 한사람인 J씨가 자신은 틈만 나면 인사동엘 자주 다녀온다면서, 여러 가지 장신구며 고물건들을 구입 해와 집안에 장식하곤 하던 것을 심심찮게 보아오던 터이었기 때문이다. 기회가 닿으면 나도 한번 가보리라고 마음에 두고 있었지만 명분도 없이 그냥 가게 되질 않는데다가 눈코뜰새 없이 바삐 돌아가는 현실속에서 그런 한가한 시간을 낸다는 게 쉽지 않았었기 때문이다.
마침 언니가 인사동 쪽에 자리한 풍문여고 출신이라 그곳 지리를 잘 알 것 같아 함께 가자고 했다.
큰아들 또한 서울에 약속이 있다기에 겸사겸사 함께 동행하기로 했다.
우리가 만난곳은 종각역 지하에 자리잡은 새로 생긴 서점이었다. 그러고 보니 새로 생겼다는 것은 나만의
판단이다. 듣자니 벌써 꽤 오래전에 생긴 국세청 건물 지하에 자리한 대형 서점겸 휴식공간으로 지하철을 오가는 사람들이 잠깐씩 들러 더위도 식히고 부담없이 맘껏 책을 볼 수 있는 편안한 공간으로 꾸며져 있다는 것이다. 책꽃이 통로마다 젊은이들이 바닥에 앉아 시원한 에어컨 바람을 쏘이며 독서삼매경에 빠져있으니 서울에 살면 특별 혜택을 누리는 것 같아 내심 서울시민이 부러웠다. 꽤 오랜만에 문명세계를 경험한 듯한 느낌을 받았다. 20여년전엔 나도 서울시민이었건만 세월이 많이 흘러버렸다.
인사동은 종각역에서 5분거리에 있다. 낙원동을 시작으로 하나의 테마거리처럼 형성되어 있다.
언니는 자신의 학창시절의 그 거리와는 너무나도 많이 변해버린 인사동거리를 걸으며 연신
‘너무 많이 변했다’
면서 눈이 휘둥그래지곤 했다.
거리엔 퍼포먼스도 가끔 있었고 북한수재민을 돕자는등의 모금운동에 열심인 사람들도 있었으며
‘평화선언’이라는 플랭카드를 내걸고,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서명을 받는 사람들도 있는 등 인사동은 살아 움직이는 활기찬 모습이었다..
우리는 우선 왼쪽길부터 ‘인사동거리 탐사’에 나서기로 했다.
조그마한 열쇠고리부터 시작해서 커다란 전통 장식장까지 눈길을 뗄 수 없는 이쁜 물건들이 즐비했다.
일본인이나 러시안등 우리의 전통물건들을 구경하는 외국인들도 여기저기 심심찮게 눈에 띄었다.
내가 춘천에 칩거(?)해 세월을 보내는 사이 어느새 서울은 국제적인 도시가 되어가고 있었다.
나는 디카 셔터를 여기저기 누르느라 바쁜데 그곳상인들은 사진 촬영을 금해달라고 부탁한다. 무슨 대가들의 작품들도 아닌데 여기서는 소품하나까지도 대접받는 장소라도 되는지...심사가 잠깐 편치않다.
우리의 목적인 퀼트전시회를 가기 전에 우선 점심을 해결하기로 했다. 조카 는 친절하게도 벌써 제 엄마에게 인사동에서 음식 잘 하는 곳 정보를 알려주었던 터라 우리는 물어물어 그곳을 찾아 들어갔다.
좁은 장소에도 사람들로 꽉 차 있어서 정신이 없었다. 그래도 음식 맛은 좋아서 만족한 식사를 했다.
인사동은 먹을거리로도 한몫하는 곳으로 인식되어 있다더니 소문이 그냥 있는게 아니었나보다.
인사동의 건물은 저마다 나름대로의 특징이 다 있어서 허름한 옛주택들이 즐비한 곳인데도 내부를 모두 개조를 해서 현대적인 시설들을 갖추어놓고 있었다. 골목골목마다 특유의 지형을 그대로 묘하게 살려 모두 음식점이나 전통찻집들로 꾸몄다. 하지만 옛 낡은 기와지붕은 그대로여서 보이지 않는 곳이라 하여 방치해 둔 속마음이 그대로 드러나보였다. (옆 3층 찻집에서 내려다 보니 사람의 눈에 잘 뜨이지 않는 곳이라 그런지 지저분한 것이 30년전 모습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
일본사람들이 많이 들르는지 여기저기 일본말로 된 간판들도 많았다. 몇 년전 일본에 다녀온 적이 있는데
교또에서 갔었던 ‘청수사’ 올라가는 거리풍경과 몹시 흡사했다. 그곳에서도 일본의 전통적인 물건들을 즐비하게 내놓고 팔고 있었다. 좁고도 경사진 언덕길을 올라가면서 옛날 어린시절로 돌아간 듯한 느낌이었는데 인사동거리에서도 그랬다. 볼거리가 많아 어디에 시선을 두어야 할지 모르겠다.
갑자기 이조시대 관청의 수문장과 병사들 복장을 한 한무리의 사람들이 지나간다. 인사동의 이미지를 강하게 하기 위한 퍼포먼스 . 그곳 분위기에 잘 어울리는 복장이었다. 그냥 지나만 가지 말구 구성을 좀 더 짜임새 있게 했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었다.
‘인사아트프라자‘라는 건물이 있기에 제대로 찾았다며 그곳으로 들어갔다.
3층부터 5층까지 전시장으로 되어있는데 층마다 몇 개의 전시실로 되어 있어 작가들이 자신들의 작품을 전시할 때마다 빌려 사용하는 전용건물이었다. 우리가 찾는 곳은 아니었지만 덕분에 좋은 그림전시회를 감상할 수 있었다. 얼마만인가 전시회장엘 가본지가. 서울의 이름있는 갤러리들은 특수한 사람들만 드나드는 곳이라는 인식이 있어 선뜻 찾기가 머뭇거려지는 장소이긴 하다. 누가 뭐래는 것도 아닌데 괜히 주눅이 드는건 왜일까. 여하튼 그림을 앞에 두고 감상하는 여유따윈 나하곤 거리가 먼 듯 살아왔는데 오늘 우연찮게 좋은 기회를 만났다. 자연을 표현한 그림들 중에 잔잔한 꽃그림이 좋아보이는 걸 보니 나도 어느새 나이를 먹나보다. 그림에 영 소질이 없는 나로서는 자잘한 꽃잎 하나까지 섬세하게 그려낸 작가가 대단해 보였다. 나도 풍경유화 정도는 그릴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본적이 있었는데 아직 꿈을 버린건 아니니 언젠간 시도해볼일이다. 오늘의 전시회가 내 꿈을 시작하기에 좋은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곳을 나와 몇미터정도 지나 인사동 메인 거리에 우리의 목적지 ‘인사아트센터’가 자리하고 있었다.
4층에 들어서니 입장권을 구매해야 한단다. 3장을 사들고 전시장에 들어서니 나를 가르치는 선생님이
그곳에서 나를 반기며, 초대권이 있는데 괜히 구입했다고 아쉬워하셨다. 좀 억울한 생각이 들었지만
귀한 전시회를 보는데 그 정도는 내고 봐야 도리일 것이다.대작들을 3개층에 걸쳐 벽면 전체에 전시해 놓았는데 감탄이 절로 나왔다. 그 큰 작품들을 바늘 한땀씩 꿰매려면 얼마나 많은 공이 들었을까 짐작이 갔다.
특히 집모양패턴으로 만든 작품과 꽃모양패턴 그리고 재미난 생활모습을 아플리케한 작품들이 내맘에
들었다. 언니는 작품들을 보면서
‘나도 한번 배워볼까?’
한다. 뭐든 취미를 가져보는건 좋은일이다.
요즘 4,50대 여성들이 애들 다 키워놓고 우울증 걸리기 쉽다는데 퀼트배우기를 권해보고 싶다.
우울증 걸릴 일이라곤 없을 듯 싶다. 시간보내기엔 더없이 좋은 일인 것이다.
6층까지 전시된 작품들을 다 관람하고 우리는 다시 인사동 거리 배회에 나섰다. 아기자기한 소품들과
전통가구랑 도자기 한지가게 필방 자개장 장신구 모시조각보 향초 전통인형.....................
사람의 손으로 만든 것에는 한계가 없는 것 같았다.
내게 자개장은 추억의 한자락이다.
어린 시절 우리집 안방엔 커다란 자개장이 있었다. 검은 바탕에 흰색의 자개무늬가 박혀있었는데 희미한 기억으로는 아마도 조개무늬가 아니었다 생각된다. 어린시절 내내 장롱으로 오시리(일본식 붙박이
장을 넣는 장소를 그렇게 불렀다.)안에 자리하고 있던 집채만한 자개장은 언제까지라도 그곳에 있을
것만 같았다. 새로운 가구로 교체한다는 것 따위는 결코 꿈꿀수 없는 시절을 살아온 우리 엄마의 삶이
보이는 그 자개장롱이 어찌 되었는지는 기억에 없다. 아마도 내가 시집을 오고 난 후에도 한참을 지난 후
세상에 둘도 없는 효자인 막내동생이 새로운 장롱을 구입해드렸던 그 시점에 어디론가 버려진게 아닐까 여겨진다.
다리가 아파지기 시작하면서 우리는 쉴곳을 찾아 자리를 잡았다. 3층건물에 위치한 찻집인데 간판에
‘팥빙수’라고 쓴 것이 우리의 눈길을 잡았다. 더위도 식힐겸 계단을 오르는데 2층에 흔치않은 상점이
눈에 띄었다. 옛날물건을 전시해 놓은 전시장인데 입장료는 천원이란다. 입구에서 보니 학생들이 입던
교복이며 축음기 교과서 노트랑 눈에 익은 물건들이 마치 북한의 물건들을 보는듯한 느낌이 들었다.
찻집에서 더위를 어느정도 식히고 나서야 우리는 귀가길을 서둘렀다.
인사동거리 끝자락에 낙원상가가 자리하고 있다. 악기전문상가를 그냥 지나칠 수야 없지.
그냥 윈도우샤핑이라도 하자고 2층 상가로 올라갔다. 내가 바이올린을 구입했던 상점은 없어졌는지 보이질 않는다. 남편이 언젠가 자신도 악기 하나 정도는 배웠으면 좋겠다고 한 말이 생각난다. 트럼펫이나 섹스폰이 어울릴 것 같은 생각이 드는데 관악기 값이 좀 비싸야 말이지.
아주 오랜만에 가져본 여유로운 시간이었다. 서울은 이미 내 기억속에 남아있는 그 곳이 아니었다.
그만큼 세월이 흘렀다는 뜻이겠지. 그래도 서울은 내겐 오랜 친구같은 정겨운 도시이다. 아무리 변한다
해도 생뚱맞게 낯설게 느껴지진 않으니 말이다.
계절이 가는 신호처럼 8월의 태양이 서서히 그 힘을 잃어가고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기분을 상쾌하게 만든다.
오랜만의 인사동구경이 조그마한 생활의 변화요소가 되니 또 몇 달은 이대로 견딜만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