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브까페
모처럼의 휴일인데 창밖에는 아침부터 눈발이 흩날리고 있었다. 엊저녁에 지인들끼리 오늘 일기가 좋으면 홍천 수타사로 산행을 가자고 약속을 해 놓고 있던 터였으나 약속이 취소되었음을 알릴 필요도 없이 누가 봐도 오늘 산행은 취소되어야 한다고 생각할만 한 날씨다. 아쉽지만 때늦은 눈을 보며 아까운 시간을 그냥 허비하고 있었다.
요즘들어 부쩍 기타의 멋에 매료되어 있던 나는 어설픈 수준을 아직 벗어나지 못했건만 무료한 시간을 달래기도 할겸 오전 내내 기타와 씨름하고 있었다. 남편도 늦잠이 지루했는지 나를 보며 한마디 했다.
“기타 좀 쳐 보지?”
언제부터인가 나는 남편이 기타를 좀 배워두면 우리의 노후가 훨씬 여유롭고 낭만적일수 있을텐데.... 하는 바램이 있었건만 남들이 하는 걸 보기는 즐겨해도 자신이 뭘 배우는데는 별 취미가 없어보이는 남편은 내 바램과는 달리 시큰둥한 반응이었다.
노래 몇곡을 연주하고 나서 내가 가지고 있던 기타상식 몇마디를 언급하자 전과는 달리 호기심을 보였다. 마침 시간도 남아도니 이보다 더 좋은 기회가 없을 것 같아 내친김에 본격적인 기타강습에 돌입했다. 이론이야 얼마든지 가르쳐줄수 있으니 무엇이 문제랴.
G,C,D 코드를 알려주고 악보 하나를 연습할 과제로 정해주었다.
잘 하고 못하고는 본인의 연습량에 달려있으니 두고 볼 일이다.
성가대에서 오랫동안 함께 섬기고 있던 M부부로부터 저녁에 차 한잔 하러 가자는 제의를 받았다.
강촌에 라이브까페가 있는데 한번 가보자며 기타를 들고 나오라는 주문이었다. 아직 남들 앞에서 연주할 자신은 없었으나 여하튼 기타를 들고 따라나섰다.
막국수로 저녁을 먹고 우리 두 부부는 강촌으로 향했다.
강촌 역사를 개조해서 까페를 꾸민 “예인”은 내가 백양리로 일을 하러 다니면서 늘 오가던 길목에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강을 따라가며 늘 그 까페 앞을 지나다니면서 한번쯤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왔던 터였다. M은 음악을 좋아해서 섹소폰을 배우기도 하고 ‘7080음악동호회’에서도 활동하고 있는데 자신의 동호회 회원들과 한번 오고 싶어서 답사를 왔던 까페라고 했다.
분위기가 좋고 여러 가지 음향시설이나 악기들이 잘 되어 있어서 오늘 우리들의 티타임 장소를 그곳으로 정했다며 섹소폰을 차에서 꺼내 들고 까페안으로 들어섰다.
날보고도 기타를 들고 들어가자는 M의 권유가 있었지만 아무래도 영 자신이 없었기에 굳이 마다하고 우리는 까페안으로 들어섰다.
까페 안은 한가했다. 두어쌍이 커피를 앞에 놓고 창밖을 감상하고 있었다. 무대위를 바라보니 과연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부담없이 즐길 수 있도록 분위기를 만들어 놓고 있었다. 커피값이 다소 비싸다고 느끼면서 우리는 헤즐럿과 불루마운틴을 주문했다.
강물이 밤 조명을 받아 반짝이는 것을 바라보면서 커피맛을 음미했다.
M이 섹소폰을 꺼내들고 무대위로 올라갔다. 하지만 컴퓨터 반주기가 말썽이다. 그곳에 설치되어 있는 것이 손에 익지를 않아 작동법을 잘 모르겠다는 것이다. 주인의 도움으로 그럭저럭 작동을 시작한 반주기에 맞춰 M 의 섹소폰 연주가 시작되었다.
M은 몇 년동안 꾸준히 연습에 매진하는 듯 하더니 섹소폰 연주솜씨가 여간 훌륭해 진 것이 아니어서 전문 연주가 못지 않은 음악을 선사했으므로 우리는 아낌없는 박수를 쳐주었다.
무대 한옆으로 그랜드 피아노가 자리하고 있었다. M 은 함께 연주하기를 원해서 나는 용기를 내서 피아노 의자에 앉았다. 라이브 무대에 서는 것은 나로서는 흔치 않은 기회였다. 몇 년전 남편과 남쪽지방을 여행하다가 잠시 들른 찻집에서 (그당시는 손님이 우리들밖에 없었다) 연주해본 기억이 있기는 하다. 워낙 오래된 일이라 기억이 가물거린다.
M이 조용필의 ‘들꽃’을 연주하였으므로 피아노로 반주를 해주었는데 피아노의 성능이 아주 좋아서 오랜만에 연주의 즐거움을 맛보았다. ‘이바하‘ 였는데 시골라이브까페에서 연주하기는 좀 아까운 피아노란 생각이 들었다.
M의 섹소폰 연주는 점점 무르익어가고 있었다. 다른 손님들이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 한곡으로 만족하고 무대에서 내려오려는 나를 주인장이 자꾸만 피아노반주 하면서 노래하라며 독려했다. 피아노가 맘에 들어 굳이 마다하지 않고 몇곡을 함께 연주하고 노래도 부르면서 라이브를 즐겼다.
끝날 무렵 우리 부부가 즐겨 부르는 ‘양희은’의 ‘한사람’을 마지막으로 우리는 무대에서 내려왔다.
내일부터 또 바빠질 일이 맘에 부담으로 살짝 다가왔으나 괘념치 않았다. 7080세대를 위한 음악회나 노래부르며 건전하게 즐길수 있는 기회가 별로 많지 않은 우리 사회가 아쉽다는 생각을 늘 해오던 나는 오늘의 라이브무대경험이 싫지 않은 기억으로 남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