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추수 2
지난번 못다한 가을 갈무리를 했다.
마른 들깨 거둬들여 두드리고 팥이며 콩도 뽑아 마당에 말려뒀던 것을 까고 고추도 서리 내리기 전에 이파리랑 붉은 고추를 모두 땄다. 파란 고추는 많으니 두루두루 나눠줘야겠다.
고추잎을 커다란 양은 솥에 물을 끓여 살짝 데쳤다. 하루이틀 볕 좋을때 바짝 말려 두었다가 김장때 남은 무우를 말려 섞어 장아찌를 만들어야지.
역시 가을은 계절중의 으뜸이야. 바람결이 너무도 기분좋은 느낌으로 다가온다. 춥지도 덥지도 않은,
하지만 10월말에 어울리게 약간은 차가운 느낌의 가을바람이 있는 밭에 있으면 행복해진다.
더도 덜도 말고 10월만 같아라? 그래. 나만의 어귀로 이 계절을 사랑하리라.
"점심엔 오랫만에 고기 구워먹는게 어때요?"
"웬일이야. 당신이 고기 구워 먹자는 말을 다 하고?"
고기를 별로 즐기지 않는 내가 말하자 남편은 의아한 듯 쳐다본다.
워낙 육식을 좋아하는 남편이 반색을 한다.
드럼통으로 만든 그릴에 아래로탄(번개탄)을 두어개 올려놓고 불을 붙이면 약식 화로가 된다.
정식으로 나뭇가지 올려놓고 구우면 훨씬 더 맛이 있지만 일하느라 바쁘니 오늘은 이대로 만족이다.
다른 건 생략하고 살짝 소금뿌린 삼겹살과 돼지기름에 얹어 놓은 김치만 구워도 이세상 맛이 아니다. 난 사실 고기보다도 구운 김치맛 때문에 고기구워 먹자는 말을 했다.
식사후 커피는 절대로 절대로 생략할 수 없는 물로리에서의 행복이다. 아무리 바빠도 커피는 꼭 잣나무아래 벤치에서 뒷산 은행단풍을 바라보며 마셔야 오늘 할 일을 다 한것 같은 느낌이다.
오후 일과가 다시 시작되었다. 고추잎을 따다 말고 갑자기 디카를 찾았다.
밭 옆에 줄지어 서 있는 나무가 노오랗게 단풍이 들어 너무 아름다웠다.
'급할 일 있나뭐? 쉬엄쉬엄 하다가 힘들면 그만 하구 내일 또 하지 뭐. 내다 팔 것두 아니고. 일단 저 나무좀 찍구요. 아무리
바빠도 느낄건 느껴야하니까"
서울토박이가 팔자에 없는 농사짓느라 시골아낙 다 되어 하는 말이라 그런지 어째 영 철없어 보이나보다. 돌아서면 일거리가 천지에 싸였는데 쉬엄쉬엄하자니 그럴 수 밖에....
하지만 남편과 시어머님처럼 죽어라~~일만 하는 우직함은 영 맘에 안든다. 홍천사람과 서울사람의 차이점이라고나 할까?.
해가 서쪽으로 뉘엿뉘였 기울기 시작할 무렵 마당에 추수한 곡식들을 주욱 늘어놓고 끝마무리한다.
"휴! 이 많은 걸 누가 다 먹지? 은근히 걱정되네. 적당히만 심을껄..'
많아도 걱정이다. 이걸 이집저집 나눠주는 일도 큰 일거리네.
암튼 오늘도 또 우리를 이모저모로 먹여 살리시는 조물주 하나님께 감사 또 감사한 하루다.
우직할 정도로 일만 하는 우리 남편. 좀 쉬엄쉬엄 하자구요.
열심히 일한 당신들! 맛있게 즐길 자격 있음!
들깨를 터시는 우리 시어머님. 팔순나이가 무색할 정도로 열심히 일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