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내기 가드너
< 2022. 3. 1>
나이가 들고 아이들도 모두 자라 홀로서기를 하고 나니 남는 시간이 무료하다.
몇 년 전 우연한 기회에 화천의 거례리에 자그마한 텃밭을 마련했다. 그동안 삶이 바빠 밭에는 신경쓸 여력도 시간도 없었는데 이제야 비로소 마음이 간다. 산자락 아래 있는 밭은 그동안 계속 묵혀 두었던 터라 나무가 우거져 마치 산처럼 돼버렸다.포크레인의 위력을 다시 확인하면서 우리는 산이 됐던 곳을 원래대로 밭으로 만들었다. 밭을 밀면서 아까운 나무들은 살렸다. 그 덕에 밤나무 서너 그루, 뽕나무 한그루가 위용을 자랑한다. 밤나무는 더운 여름에 시원한 그늘을 제공해 주고, 뽕나무는 맛있는 오디열매를 주니 자연의 고마움을 제대로 느끼고 있다. 작년 여름 처음으로 뭔가를 심어봤다. 이젠 먹는 양도 많이 줄어서 조금씩만 가꿔야 하기도 하고, 전문가가 아니다 보니 모든 게 서툴어서 제대로 수확한 건 고추뿐이었다.
<첫해 텃밭농사 실패담>
산을 깎아 밭을 조성하고 나서 처음으로 농사를 짓는 땅이라 거름을 많이 안 해도 된다기에 조금만 뿌리고 밭을 갈아 엎었다. 밭은 남향이지만 우리의 목적은, 농사보다는 쉼터로 사용하자는 취지아래 밤나무를 베지 않아 햇볕을 제대로 받지 못한 것이 제일 큰 실패의 원인인 것 같다. 거름도 제때 해줘야 하는데 그것도 부족했고.
1)고추 - 꽈리고추, 청양고추, 풋고추 등 종류대로 심었는데 그늘쪽에 심어서인지 풋고추 외에는 재미를 보지 못했다.
2)상추는 너무 늦게 파종하여 제때 수확을 못했다. 모종을 사서 심었더라면 좀 나았을것 같다.
3)고구마는 50대를 심었는데 멧돼지가 모두 파먹어서 실패했고, 4)옥수수 모종도 50개를 심었는데 고라니가 모두 잘라먹었다.
5)참외와 오이는 거름도 부족하고 햇볕도 충분치 않았다.
6)부추와 대파는 모종을 사서 심었는데 통 자라지를 않았다. 땅에 영양분이 적었나보다.
7)명이나물은 음지에서 자란다고 해서 고추를 심은 중간중간에 심었는데 자라지 않았다.
8)들깨 - 씨앗을 파종했는데 역시 그늘이 져서 발아가 더뎠다.
9)차대기(보라색 깨)- 산을 깎아낸 비탈에 심었는데 거름이 부족했다.
10)김장배추 - 그늘엔 일찍 심어야 한다는데 거의 8월 말에 심어서 그런지 잘 자라지 않아 포기가 앉지 않았다.
11)김장무- 무의 밑동은 별로 들지 않고 이파리가 무성해서 그나마 다행이었는데 수확하려고 와보니 고라니가 하나도 남김없이 다 잘라먹고 쑥대밭을 만들었다.
12)김장갓 - 우리가 성공한 두번째 작물이다. 맛있는 갓김치를 담글 수 있었다.
13)총각무- 이것 역시 성공했다. 겨울총각김치는 지금도 맛있게 먹고 있다.
14)쪽파- 구근을 얻어 심었는데 어느정도 자라더니 잎 끝이 누렇게 변하고 만다.
15)쑥갓 -파종을 했는데 이것도 어느정도 성공했다.
16)가지- 여름내내 따먹을 수 있었다.
17)토마토와 방울토마토- 너무 많이 열려서 미처 따먹을수 없었다.
곤드레와 당귀, 취나물도 심었는데 별 재미를 보지 못했다.
역시 농사는 아무나 하는게 아닌가보다.하지만 꽃은 어느정도 재미를 보았다. 모종과 씨를 병행했는데 기대 이상으로 잘 자라주었다. 유홍초, 분꽃, 채송화, 한련화, 봉숭아, 국화......
그래서 농사 2년차인 올해는 작년의 실패를 거울삼아 여러가지를 보완해보려 한다
무엇보다도 채소 경작의 범위를 축소하고 정원의 범위를 넓혀가야겠다. 노년에 정원을 가꾸면서 힐링도 하고 몸과마음의 여유를 갖는 사람들이 많아졌다니 나도 한번 도전해봐야겠다. 유튜브에 많은 정보들이 있으니 차근차근 따라하면 별로 어렵지 않을 것이다. 오래전부터 나의 버킷리스트에는 자연과 함께 하는 삶을 동경하는 내용들로 리스트를 적어놓았다. 이제 하나하나 이뤄가는 재미로 남아도는 시간을 활용하는게 제일 좋은 노년생활일 것 같다. 그런 뜻에서 자그마한 텃밭이라도 가꿀 곳이 있다는 것에 감사할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