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들의 이야기
초기방문을 마치고
결혼이민자를 대상으로 한글을 가르치면서 매번 느끼는 가벼운 설레임이 오늘도 어김없이 내 마음에 찾아들었다. 이번엔 어떤 가정들과 만나게 될까? 너무 안타까운 상황에 처한 대상자는 아니었으면 좋을텐데...
하지만 ‘진인사대천명’이라 했던가. 어떤 가정이 내게 주어지더라도 최선을 다해 섬기면 나름대로 만족스런 보람을 얻을수 있으리라 생각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만면에 미소를 짓고 최대한 밝은 목소리로 만날 것을 스스로 다짐하면서 그녀들과의 만남을 기대하였다.
1. 베트남에서 온 5년차 주부, 회사에 다니는 남편과 3세아들, 그리 고 홀시아버지를 모신 가정이었다. 남편은 나와 첫 만남인데 회사친구들과 낮술을 했노라며 미안해했다. 회사 월급이 석달이나 밀려 괴로운 마음에 그랬다며 이해해 달라는데야 어쩔 도리 없다.
남편은 아내를 극진히 생각하지만 아내가 베트남으로 갈 것을 지나치게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래서 어디를 가든 혼자 보내지 않고 늘 자신이 동행해야 마음이 놓인다고 했다. 그래서 그런지 그녀는
여태껏 슈퍼나 은행조차도 혼자 가본 적이 별로 없단다. 5년이나 되었는데도 말이다. 한국말 공부도 거의 하지 않아 생활회화는 어느정도 하지만 쓰기나 읽기는 초급수준이었다. 4월부터는 가정경제
가 어려워 자신도 일터에 나갈 계획이란다. 남편은 나에게 큰 기대를 걸고 있다면서 잘 좀 부탁한다고 연신 머리를 조아리니 마음에 큰 부담으로 다가왔다. 이 가정은 무엇보다도 이민자의 홀로서 기가 시급한 것으로 생각되었다. 기대에 어긋나지 않도록 마음을 쓸 일이 걱정이다.
2. 태국, 입국 7년차, 한국말하기 상, 딸 둘, 시부모와 함께 지내며 외국인을 위한 물품을 파는 소규모 마트를 운영하고 있다. 가게로 처음 방문한 내게 그녀는 환한 웃음으로 반갑게 맞아주었다. 가게
는 소규모였으며 소박한 것이 예전 우리네 동네 가게같은 느낌을 준다. 값비싼 인테리어에 휘황찬란한 불빛 가득한 상점들 보는 것 에 익숙했기에 때론 피곤도 하였을 내 눈에는 웬지 정감있게 다가 오는 가게 풍경이다. 그녀가 종이컵에 커피 한잔을 내 오며 마주앉아 이야기를 시작하려는데 손님들이 문을 빼꼼히 열고 들어온다. 그녀 들 역시 낯설지 않은 이민자들이기에 우리는 서로 어색함 없이 인사 를 나누었다.
그녀는 가게 운영에 대해 이것저것 자신의 소견을 말하는 품새가 장사에 소질이 있는 듯 보였다. 성실한 남편은 차를 가지고 시골 장터를 돌아다니며 장사를 하는 직업이지만 몸이 건강치를 않다고
했다. 간에 질병이 있어 계속 치료중이며, 완치는 쉽지 않는 상황 이란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병이 전염되지 않을까 염려가 되기도 한다. 부부사이는 좋으며, 다행히 시부모님과 함께 지내는 터라
아이들 양육에 도움을 많이 받으니 다행이나 시어머님은 백혈병을 앓고 계신단다. 큰애가 내년에 학교를 가는데 부부가 장사를 하 다보니 아이들에게 신경을 쓰지 못해 아직 한글을 깨우치지 못해 서 걱정이다. 입국한 햇수에 걸맞게 한국 생활에 큰 어려움은 없으 나 현재로서는 아이들 문제가 가장 큰 고민 거리이다. 앞으로 내 가 특별히 신경써야할 대목인 듯하다.
3. 그녀는 한국인과 별반 다를바 없다. 우즈베키스탄에서 5년전에 입 국하였으며 똑부러지는 성격의 소유자인듯하다. 한국생활에 너무나 잘 적응하고 있고 웬만한 한국여자들보다 더 한국생활정보에 밝다.
하지만 남편과 심각한 갈등으로 고민중인그녀, 남편과는 모든 면 에서 대화가 통하지 않고 사고방식 자체가 너무 다르다. 완벽주의 이며 철저한 원리원칙자인 그녀와는 달리 남편은 대체로 무능하며 삶의 목적도 분명치 않다. 그녀가 처한 상황은 최악이다. 전처의 자식에, 아직도 아들밖에 모르는 시모에, 무능하면서도 아직도 전 처와의 연결고리를 끊지 못하는 남편, 경제적 아려움, 그 모든 것 들이 그녀를 괴롭고도 강하게 하는 것 같다. 생활력도 강하고 딸에 대한 애착도 강한 그녀는 이미 남편과의 이혼을 작정하고 홀로서기 를 준비하고 있는 상황이다. 전반기 대상자들중 가장 어려운 대상 자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만 가지고는 판단하기 어려운 것이 또한 이 일이기에 5개월동안 잘 감당하게 해 주실것을 하나님께 기도드렸다.
4. 캄보디아에서 온 아름다운 그녀, 입국한지 2년이 채 되지 않음.
23세, 뭔지도 모르고 애엄마가 된 그녀는 지금 하루하루가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 시어머님의 매서운 잔소리는 그렇다 치더라도 하루도 빠짐없이 술을 먹고 자정이 넘어서 귀가하는 남편, 6개월된 딸아이 양육도 그녀에겐 힘에 겹다, 몸무게가 40kg정도이니 그럴만도 하다. 작년엔 쉼터에도 다녀온 경험이 있어 가족들도 그녀도 상처를 가지고 있다. 심성이 바르고 착해 보이는 그녀는 어서 속히 지금의 힘겨운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다. 시집식구들과 잘 지내보고 싶은 마음은 그 누구 못지 않으나 자신의 마음을 몰라주는 가족들이 야속하다. 그녀의 커다란 눈엔 어찌 그리 눈물도 많은지 모르겠다. 그녀의 힘이 되어 줄수만 있다면 뭐래도 할것같은 아픔을 내게 심어준 그녀를 어떻게 도울 수 있을지 연구 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