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모음

눈오는 날의 감상

이제쯤은산촌에서 2011. 4. 21. 22:00

아침에 일어나 무심코 창밖을 보니 하얀눈이 밤새 내렸다.
난 잠시 억울한 기분을 맛본다.
눈이 내리는 것도 모르고 잠을 자다니....
한겨울 소복히 내리는 아까운 눈의 정취를 그만 놓치고 만 것이 내내 속상했다. ...

어렸을적 겨울엔 요즘보다 눈이 많이 내렸다. 밤에 눈이오면 아무도 없는 뜰안을 바라보며 부엌문 밖에 쪼그리고 앉아 하염없이 눈을 감상하곤 했었다. 그러면서 내심 ‘이 눈은 어디서부터 오는걸까.’ 따위의 호기심어린 생각을 가지기도 했다.
혼자만의 고요함 속에 펄펄 내리는 현란함과 까만밤에 하얀 나풀거림이 하늘로부터 쏟아져 내리는 눈사위가 내 작은 어린 가슴을 감동시키곤 했던 것이다.
그럴때면 어디 꿈속에라도 있는양 손이 꽁꽁 어는 줄도 모르고 마냥 상념에 젖어드는 것이었다. 사랑이 많으시던 부모님  슬하에서 티없이  자라나던 시절, 눈이 펑펑 내리는 오후면 나는 어머니가 마당에 볏짚으로 만들어 놓으신 김칫광을 감상 장소로 삼곤 했다. 그곳엔 겨우내 먹을 김장독 5-6개정도가 묻혀 있었고 김칫독 뚜껑 역시 볏짚으로 덮여 있어 작은 내 엉덩이 하나쯤이야 걸터앉아도 무방했으므로 그곳에 앉아 가마니로 대충 만든 문을 빼꼼히 열고 앉아 잿빛하늘로부터 쏟아지는 하얀 눈의 군무을 오래도록 내다보고 있곤 했다. 운이 좋은 날엔 어머니가 말려놓으신 하얗게 분이 서린 찐고구마 한조각을 간식삼아 먹으며 홀로앉아 눈오는 날의 고독을 즐겼던 것이다. 정말이지 난 그런 날의 고독이 눈물겹도록 그립다.
간밤에 내린 눈으로 집 앞이 모두 하얗게 덮여 있는 아침이면 엄마와 난 빗자루를 들고 눈쓸기에 나섰다. 나는 한 두사람이 다닐 수 있을만큼 좁게 길을 내느라 짧은 몽당빗자루를 연신 저어대는 나와는 달리 어머니는 큰 싸리비로 마당전체를 쓸곤 하셨다. 이마에 땀을 연신 닦으시면서도 옆집 울타리 안까지 쓸어주는 것을 잊지 않으셨다.
난 눈을 쓸어내는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언제까지든지 눈이 마당에 그대로 있었으면 하고 바랄뿐이었다. 친구들과 함께 눈사람을 만드는 일, 신으로 눈밭에 그림을 찍어 꽃을 만드는 일, 골목길 한켠을 반질반질하게 다듬어 미끄럽게 만들어 언니들과 함께 저만치 내달아 미끄럼을 타던 일, 그러다가 미끄러워 걷기가 불편하신 어른들게 꾸중듣던 일. 그런 어른들이 눈어름길에 연탄재라도 뿌릴 양이면 아쉬운 듯 원망의 눈초리를 보내야 했던 시절, 우리 형제의 사랑을 독차지했던 강아지 ‘캐리’와 눈밭을 뛰어다니던, 그 모든 아름다운 기억들이 지금도 눈에 선한데....
어려서부터 겁이 많았던 나는 ‘눈싸움’ 을 싫어했다. 형제들이 ‘눈싸움’ 하자고 나서면 나는 한결같이 싫다며 거부하곤 했다. 눈이 눈 다음날 해가 반짝 청명하게 내리쬐는 날이면 일본식 적산가옥이었던 우리집 지붕위에선 하루종일 눈이 녹아 기와를 타고 아래로 떨어져 내린다. 해는 눈이 부신데 지붕에선 비가 오는 느낌은 추운 겨울 날씨와 어우러져 무척 청아하다. 그리곤 다음날 아침엔 길다란 고드름이 처마밑을 병풍처럼 길게 늘어지곤 한다. 그시절 겨울은 왜 그리도 추웠는지... 지금도 난 겨울동안만이라도 저 영동지방의 눈이 지붕까지 쌓인다는 그곳에 살고 싶다. 눈이 너무 많이 와 옆집과는 새끼줄을 달아 눈 굴을 뚫어 연락한다는 꿈같은 눈나라에 한번쯤 살아보고 싶은 것이다. 철없는 발상? 눈이 오면 얼마나 불편한줄 아느냐는 사람들의 핀잔이어도 아랑곳없으니 이 나이에도 아직 철이 없나보다. 그곳 그 눈에 파묻힐 날이 있으려나.요즘은 눈이 와도 그때와 같은 감상은 들지 않는건 왜일까? 외형적인 생활수준은 나아졌어도 마음의 생활수준은 오히려 자꾸만 퇴보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