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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구곡폭포는 깨질 것 같은 하늘이 일품입니다.

이제쯤은산촌에서 2011. 4. 21. 21:51

그동안 벼르고 별러왔던 겨울 폭포행을 드디어 오늘 실행에 옮겼습니다. 지난 5개월여 함께 공부했던 일본인 L씨와 Y씨, 그리고 Y씨의 8살짜리 막내아들과 함께 한 나들이였어요.

한국에 온지 10년이 넘었지만 그녀들이 살고 있는 서면과 가까운 거리에 있는 구곡폭포를 아직 가보지 못했다고 하기에 어렵게 날을 잡았거든요. 공교롭게도 오늘은 올 겨울들어 가장 추운 날씨였답니다. 어제저녁엔 은근히 걱정이 되었습니다. 괜히 추운데 고생시키는 건 아닐까. 다음에 가자고 할까. 그냥 공부하자고 할걸 그랬나 하고 변덕이 일면서 마음을 결정하지 못하겠더라구요. 하지만 오늘 아침 일기예보를 보니 오후에는 예년기온을 되찾는다고 하기에 그냥 계획대로 감행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엊저녁부터 끓여놓은 대추차를 따끈하게 데워 꿀을 타서 보온병에 넣고, 지난번 베트남 친정에 다녀온 D씨가 선물이라고 가져온 베트남산 믹스 커피와 종이컵, 그리고 커피를 저을 찻숟가락을 비닐 봉지에 싸서 작은 보온병 두 개와 함께 준비했습니다. 추운 산행 중 마실 따뜻한 커피를 생각하니 저절로 속이 풀리는 기분이었습니다.

의암댐에서 만나기로 한 약속을 떠올리며 부지런히 페달을 밟았습니다. 그녀들은 제시간에 도착하였더라구요. 넓은 길도 있지만 우리는 구길을 따라 강촌으로 향했습니다. 목적지까지 도착하는데 시간이 좀 더 걸리더라도 자연 경관을 맛볼수 있는 옛길을

선택했지요. 그녀들도 저와 같은 생각이라고 했습니다. 의암댐에서 강촌까지는 10분이 채 걸리지 않는 거리여서 약간은 싱겁게도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오후에 보건소에서 하는 한국춤 강습에 갈 계획이 있다는 Y씨의 스케쥴에 맞추려면 부담없는 거리가 좋을 것 같기에 마음은 편했습니다.

구곡폭포로 들어가는 길은 겨울답게 한산하고 적적했습니다. 하지만 햇살이 비치는 산촌마을은 느낌이 따사로웠으므로 차 안에서 바라보는 풍경이 그리 냉랭하지만은 않았습니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매표소로 들어서자마자 계곡 다리앞에 아주 두툼한 얼음기둥이 우리를 맞았습니다. 일주일 내내 매서운 추위가 기승을 부리자 폭포 관리소 쪽에서 물을 일부러 뿜어 내어 얼음기둥을 만들었나 봅니다. 겨울에만 볼 수 있는 풍경이었습니다. 다리 밑으로는 구곡폭포에서 흘러내려오는 계곡이 얼어붙어 겨울 산하를 실감나게 했습니다.

구곡폭포는 나무로 뒤덮인 산책길이어서 해를 볼 수 없는 것이 특징입니다. 그래서 무더운 여름에는 더위를 느끼지 못할 정도로 시원한 곳이지요. 하지만 겨울에는 을씨년스러움을 감내해야 합니다. 그녀들도 추운지 몸을 움츠렸습니다. 폭포로 올라가는 길 오른쪽으로는 돌탑들이 즐비하게 서 있었습니다. 어느새 초등학생인 찬현이는 추위도 모르고 탑에 쌓을 돌을 찾느라고 야단입니다. 그런데 녀석은 장갑도 없고 옷도 얇은 트레이닝복을 입었더라구요. 부지런히 엄마를 따라오느라고 미처 장갑을 챙기지 못했나봅니다. 내심 안쓰러운 마음이 들어 제가 끼고 있던 털장갑을 끼워주었습니다.

요즘들어 자주 일어나는 건망증 때문에 자꾸만 사 놓았던 털장갑이 여러 벌 있었거든요. 아무래도 애들은 추위를 덜 느끼는지 얇은 옷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개울에 돌을 던져 얼음을 깨 보이기도 하고 미끄럼도 타며 재미있어 했습니다.

햇볕의 영향력은 대단했습니다. 햇볕이 비치는 곳은 따스한 기운이 느껴졌지만 그늘진 곳은 마음마저 춥게 했습니다. 간간히 산을 내려오는 사람들이 우리들의 추운 마음을 그나마 덜 외롭게 해주었습니다. 매표소에서 폭포까지는 10분 정도의 거리밖에 되지 않았기에 추운 날씨를 택해서 그녀들에게 미안했던 마음이 조금은 희석되는 느낌이었죠.

폭포의 장관이 저 멀리 눈에 들어왔습니다. 하지만 폭포는 가까이서 보아야 그 느낌을 만끽할 수 있으므로 그녀들이 섣불리 감상하지 말기를 부탁했습니다. 오랜만에 오니까 예전엔 없었던 나무 데크도 설치되어 있고 한결 쉽게 올라갈 수 있었습니다.

드디어 하늘끝까지 이어진 구곡폭포의 거대한 얼음벽이 우리들 앞에 드러났습니다. 그제서야 그녀들은 내가 섣불리 감상하지 말라고 부탁했던 이유를 깨달은 듯 했습니다.

겨울 구곡폭포는 빙벽타기로 유명하지요. 하지만 얼음이 완전히 다 얼려면 1월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해마다 신년연휴가 되어야 젊은이들이 빙벽타기를 하러 많이 내려오곤 합니다. 아직은 여기저기 빈 구석이 보이는 빙벽이지만 우리에겐 그만큼도 충분히 좋았습니다.

폭포아래에서 보온병을 열어 대추꿀차와 베트남커피를 마셨습니다. 뼈속까지 따스한 기운이 스며드는 것이 이 세상 맛이 아니더군요. 별것 아닌데도 그녀들은 나의 세심한 준비에 고마워했습니다. 찬현이는 이리저리 날뛰며 신이 났습니다. 우리는 어딜 가든 꼭 해야할 일인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었어요.

오래된 내 디카가 또 말썽입니다. 몇장만 찍어도 금방 배터리가 없어지니 난감합니다. 아쉽지만 너댓장만 찍고 그것으로 만족해야 했습니다.

내려오는 길에 현이가 그럴듯한 음식점을 발견했습니다. 사실 입구에서부터 음식점을 봐 두려고 여기저기 찾아봤지만 거의 다 닭갈비 집이더군요. 오늘같은 날은 따끈한 칼국수가 제격인데 말입니다. 그래서 내심 어디서 점심을 먹을까 하고 걱정을 하고 있었습니다.

찬현이가 가보고 싶다고 한 곳으로 들어가니 감자옹심이 만두국이 있더라구요. 고맙기까지 했습니다. 게다가 통나무로 지은 펜션분위기와 따뜻한 히타가 있고 벽난로가 있는, 분위기가 아주 그만인 집이었어요.

맛있게 점심을 먹고 음식값을 내려고 하니, 경우가 바른 그녀들이 이미 계산을 치뤘더라구요. 오늘은 자신들이 대접을 해야 한다나요? 그녀들의 마음 씀씀이가 고마웠습니다.

내려오는 길에 Y씨에게 축하할 일이 생겼습니다. 그녀의 맏딸이 춘천의 명문 C여고에 합격했다는 전화를 해 왔던 것입니다.

우리는 한목소리로 축하해 주었고 그녀의 기분은 날아갈 듯 했습니다. 오늘의 산행은 이래저래 성공한 것 같아 내 마음도 편했습니다. 의암댐에서 그녀들과 아쉬운 작별을 고하고 지난 시간들을

서로 감사했습니다. 아침에 부지런히 만들어둔 크리스마스카드를 전해주자 그녀들은 내게 고맙다는 말을 잊지 않았습니다.

그녀들과 헤어져서 돌아오는 길에 FM 라디오를 켜니 ‘머라이어 캐리’의 ‘OH HOLY NIGHT’ 이 흘러나왔습니다. 일에 대한 긴장감과 잔뜩 쌓인 일거리로 인해 마음이 늘 바빴던 한달을 되돌아보며 모처럼 홀가분한 기운을 맛보았습니다. 편한 마음으로 큰 소리로 캐롤을 따라 불렀지요. 나뭇가지 사이로 보이는 파랗다 못해 깨질것만 같은 하늘이 얼마나 청명한지 마음을 깨끗이 씻어주는 듯 했습니다.

올 세모엔 그녀들과 우리모두에게 따스한 소식들만 들렸으면 좋겠습니다. 총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