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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년에 들어섬을 인정하며 살아가기

이제쯤은산촌에서 2010. 6. 6. 17:08

노년에 들어섬을  인정하며 살아가기

 

오늘아침 우연히 성경책을 보다가 눈이 빡빡하고 아프기에 한쪽눈을 감고 책을 보려는데 걱정되는 현상을 발견했다. 글자의 일부분이 전혀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여러번 시험을 해 봐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러고 보니 지난 가을부터 책을 보거나 앞을 바라보면 무언가 어린거리는 게 있는 느낌이 있어왔던 게 생각이 났다. 눈꼽이 낀 것 같아 자주 눈을 비벼 보았지만 개운치 않았었다.

젊은 시절 내 눈은 양쪽 모두 시력 1.2 정도로 좋은 편이었고 5년전 쯤까지만 해도 0. 8-1.0정도로 비교적 좋은 시력을 유지해왔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갑자기 책을 멀찌감치 두고 읽게 되면서 드디어 내게도 노안이란게 찾아왔다. 나이들면 자연스런 현상이려니 생각하고 필요할 때만 돋보기를 사용해왔다. 남편도 나와 다르지 않아서 우리 부부는 3,4개의 돋보기를 집안 곳곳에 두고 있다. 그런데 이번 현상은 어느 한 부분이 전혀 보이지 않는 증상이라서  좀 염려가 되었다.

여전히 바쁜 생활 속에서 차일피일 병원에 가는 것을 미루고 있다가 드디어 동네 안과병원을 찾았다. 그런데 걱정했던 대로 의사는 내게 정색을 하면서 내 질환이 결코 가벼운 것이 아니라며 대학병원에 소견서를 써주는 것이었다.

의사의 말인즉, 눈의 망막 혈관이 터져 시야를 막고 있으며 심하면 실명될 수도 있고, 혈관상황에 따라 추가적인 막힘이나 출혈이 있을지도 모른다면서 있는대로 겁을 주었다. 혈관이 맑지 않으면 혈전등이 생겨 모세혈관등을 막는 일종의 혈관성 질환이라는 것이었다.

 

이런 일이 있을때면 늘 나 자신도 어쩔수 없는 증상, 예컨대 내가 평소에는  못 느끼며 살아왔던 예민함과 또 내가  상대적으로 남보다 심약한 사람임을 입증해주는 반응들이 내 맘속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밀려오는 두려움이 조금씩 도를 더해가면서 급기야는 상상하기조차 싫은 최악의 상황까지 머릿속에 상상이 미치는 것이었다.  .

 

되도록 남을 귀찮게 하지 않고 살자는 것이 생활 신조이긴 하나 그래도 이럴땐 피붙이가 제일 믿음직스러운 것이어서 대학병원 의사인 조카에게 서울로 전화를 걸었다. 여러 가지 상황설명을 하자 함께 근무하는 안과 의사 친구에게 물어보고는  곧 전화가 왔다. 동네의사가 말한 만큼 중한 병 같지는 않으나 대강 어떤 상황인지 알겠다며 지체할 일은 아닌 것 같으니 내일이라도 자기가 일하고 있는 대학병원으로 와서 진찰을 받아보는 것이 좋겠다는 것이었다.

 

열일 제치고 다음날 아침 7시 기차표를 예매하고 나서 이른 잠을 청했지만 잠이 오질 않고 온갖 생각이 내 머릿속을 현란하게 했다. 평소 육식을 좋아하지도 않고 비만 증상이 있는것도 아니며 오히려 저체중이 고민되어 왔던 처지라 이런 류의 걱정은 한번도 해 본적이 없는 나로서는 꽤 충격적이었다. 그러고 보니 근 한달이 넘게 두통이 가시지 않고 머리가 맑지 않은 증상도 있어왔다.

한쪽 눈을 감고 사물을 바라보면 어떻게 될까? 눈이 불편하면 도대체 할 수 있는 일이란 무엇이란 말인가? 의사 말대로 아직은 그럴 나이가 아닌 듯 한데 왜 이럴까.....   걱정속에 하룻밤을 지내고 아침일찍 병원으로 향했다.

 

   대학병원에서 눈의 CT사진을 찍고 피검사를 하는등 여러 가지 검사를 하고 나서 내려진 결론은

「눈의 혈관이 일부 막혀 세세한 모세혈관이 터지게 되었고 그  혈액 잔해가 시야를 가리고 있으나 쉽게 없어지는 건 아니며, 시력이 좀 더 떨어질 수 있고 오랜 시간이 지나면 약간 해소될 수도 있으며, 피검사 결과도 콜레스테롤 수치가 조금은 높으나 걱정할 정도는 아니니 당분간 편한 대로 지내면서 추이를 보자」

는 것이었다.

 

 이쯤에서 결국 나도 나이 들어감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건강에 대해선 누구든 맘을 놓아선 안된다는 말이 실감있게 다가왔다. 주위에 비만인 친구들은 늘 내게 날씬한 몸을 어떻게 유지하느냐며 부러워했고 나도 나름대로 자전거도 타고 걷기도 하는등 건강에 관심이 있었으나, 그래도 아직은 괜찮다고 생각하고 운동에 소홀해 왔던 것이 후회가 되었다. 이번일을 계기로 또 겸손을 배우게 되었다. 나이들었음을 인정하고 순리에 따르려는 마음을 가지도록 노력할 일이다.

 

나를 아는 많은 사람들이 이번 일로 많은 염려를 해 주었고 특히 형제들이 걱정을 많이 했나보다. 동기간이 아니면 뉘라서 제몸처럼 걱정해줄까. 그동안 주위에서 나보고 나이보다 젊어 보인다며 내 나이를 선뜻 믿지 않아주곤 해서 스스로 건강에 자만했는지도 모르겠다. 이젠 노년에 들어섰음을 인정하고 삶을 좀 더 겸허히 받아들이는 자세로 살아가라는 신호이리라.

 

사실 난 삶의 진정한 멋은 40대 이후에 더 깊이 느낄수 있다고 생각해왔다. 30대 후반까지는 아무래도 아이들 키우느라 나 자신을 위한 시간들을 많은 부분 묻어두고 살아왔고, 40대에 들어서면서부터 온전한 내 시간이 조금씩 늘어가면서 그동안 접어두었던 작은 꿈들을 하나씩 꺼내어 먼지를 털고 조금씩 시도해보면서 오늘까지 지내왔다.

50대가 시작되면서 이제부터는 섬기는 삶이 될 수 있기를 소원해왔고 기회가 된다면 해외선교봉사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싶은 마음에 KOICA등의 싸이트에서 여러 가지 정보도 탐색하는등 나름대로 노년을 위한 삶의 계획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우리가 아무리 계획을 세우고 지혜를 짜낸다 하더라도 하나님께서 허락하시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으리라는 것과 영과 육의 건강은 오직 하나님의 손에 달렸음을 인정해야만 한다는 깨달음을 선물로 얻었다. 무엇이든 아직 할 수 있을 때 미루지 말고 해야만, 하지 못할 때가 오더라도 후회하지 않을거란 다짐을 다시 한번 스스로에게 하였다. 아직은 부모로서도 할 일이 남았으니 애들을 위해서도 내 몸 건강을 챙겨야겠다.<2010. 5월중순>